이순신 동상 뒤편으로 북악산이 흰 눈에 덮여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기고]
국방의식은 문화재구역에 군 막사를
세우는 만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우려하는 시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데서 더 발양되리라 믿는다 지난 연말, 한동안 중지했던 인왕산 등반 기회를 가졌다. 거의 10년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올랐던 인왕산 나들이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철마다 느끼게 했다. 성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무학대사와 조준, 정도전이 어떻게 600여년 전에 이곳을 수도로 택했을까, 그 혜안에 놀란다. 산정에서 둘러보는 서울은 그 건축물의 조형 못지않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경관이 너무 멋지다. 서울을 지킨다는 네 수호신 격인 북현무 북(백)악산과 남주작 목멱산, 좌청룡 낙산과 우백호 인왕산이 이 도시를 옹위하고 있어서 서울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그날 나는 인왕산 남쪽 계곡의 가파른 길로 올라가 산정에서 심호흡을 하고 창의문 쪽으로 뻗어 있는 성벽을 따라 내려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산하다가 인왕산 동쪽 능선에서 북악산 산복도로 쪽을 보다가 충격적인 광경에 그만 발을 멈추었다. 맞은편 북악산 서편 자락, 궁정동에서 자하문으로 가는 도로 중간에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공사판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왕산 쪽에서는 1㎞ 이상 떨어진 거리지만 파헤쳐진 땅이 제법 넓은 것으로 봐서 대단히 중요한 공사인 듯했다. 그 아름다운 산에 무슨 중요한 공사를 하기에 중장비로 저렇게 산자락을 헤집어 놓고 있단 말인가. 의구심이 짙게 났다.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내 집 가까이에 있는 환경운동연합에 가서 그 지점을 적지해 주고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지인과 언론사에도 연락해 우려를 표했다. 시공사에서 내건 공지에 따르면, ‘공사명’은 ‘○○부대 ○○소초 생활관시설공사’로 알려져 있다. 공사개요 고시로 ‘지하 1층,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의 일종의 군부대 막사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군사시설이다. 더 알아보았다. 이 사업이 시행되는 곳은 당연히 그린벨트에 속한 지역이고 또 사업부지의 일부는 문화재구역이기도 해서 관계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서울의 북악산 일원은 명승 67호로 보호받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시공자 쪽은 공지에서 “본 공사는 건축법 제29조(공용건축물에 대한 특례)에 의거 건축협의가 완료된 공사임을 알립니다”라고 했다. 아마도 이 공사에 시민들의 문의와 항의가 많을 것을 예상하여 이 내용을 공지한 듯하다. 이 공지는 그린벨트 안의 건축에 대한 허가와 문화재의 현상변경 허가까지도 다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본 한 시민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청와대와 인접한 천연자원 명소인데, 그곳에 아주 공공연하게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드러내고 산비탈을 파헤치고 깎아서 군부대를 만들 만한 긴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행정당국으로서는 그린벨트 안에 교육 및 연구시설을 신축할 경우 허가할 수 있다는 법조문을 들이대면서 위법이 아님을 강변할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도 사업부지 중 일부가 문화재구역이라 해도 국방상 필요에 의해서 부득이하게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국방, 그 중요함을 누구인들 모르겠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군미필 정권’으로서는 더구나 그 중요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북악산 산자락의 속살을 헤집고 군대 막사를 지을 정도로 다급한 사정이 있었는가. ‘국방에 무능’한 정권이 청와대 주변에 군 막사를 신축한다, 어떤 느낌을 줄까. 국방의식은 문화재구역에 군 막사를 세우는 만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우려하는 시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데서 더 발양될 것으로 믿는다. 이 공사가 오비이락 격으로 북한의 ‘청와대 불바다론’ 엄포와 최근의 방대한 토지거래 허가구역 해제 조처와 오버랩되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까 걱정된다.
1·21사태 때 ‘무장공비’들에 의해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추모비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 창의문 아래 드러나지 않게 조성해 놓았다. 정부는 군사정부 때에 경복궁 안에 배치했던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부대도 철수시켰다. 왜 그랬을까. 서울시는 인왕산 계곡, 옛날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렸던 그 아름다운 계곡을 복원하기 위해 수백억을 들여 옥인아파트를 헐었다. 이런 일과 연관시키지 않더라도 북악산에 군 막사를 조성하는 당국은 지금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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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는 만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우려하는 시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데서 더 발양되리라 믿는다 지난 연말, 한동안 중지했던 인왕산 등반 기회를 가졌다. 거의 10년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올랐던 인왕산 나들이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철마다 느끼게 했다. 성곽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무학대사와 조준, 정도전이 어떻게 600여년 전에 이곳을 수도로 택했을까, 그 혜안에 놀란다. 산정에서 둘러보는 서울은 그 건축물의 조형 못지않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경관이 너무 멋지다. 서울을 지킨다는 네 수호신 격인 북현무 북(백)악산과 남주작 목멱산, 좌청룡 낙산과 우백호 인왕산이 이 도시를 옹위하고 있어서 서울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그날 나는 인왕산 남쪽 계곡의 가파른 길로 올라가 산정에서 심호흡을 하고 창의문 쪽으로 뻗어 있는 성벽을 따라 내려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산하다가 인왕산 동쪽 능선에서 북악산 산복도로 쪽을 보다가 충격적인 광경에 그만 발을 멈추었다. 맞은편 북악산 서편 자락, 궁정동에서 자하문으로 가는 도로 중간에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공사판이 보였기 때문이다. 인왕산 쪽에서는 1㎞ 이상 떨어진 거리지만 파헤쳐진 땅이 제법 넓은 것으로 봐서 대단히 중요한 공사인 듯했다. 그 아름다운 산에 무슨 중요한 공사를 하기에 중장비로 저렇게 산자락을 헤집어 놓고 있단 말인가. 의구심이 짙게 났다.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내 집 가까이에 있는 환경운동연합에 가서 그 지점을 적지해 주고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지인과 언론사에도 연락해 우려를 표했다. 시공사에서 내건 공지에 따르면, ‘공사명’은 ‘○○부대 ○○소초 생활관시설공사’로 알려져 있다. 공사개요 고시로 ‘지하 1층, 지상 2층 철근콘크리트조’의 일종의 군부대 막사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군사시설이다. 더 알아보았다. 이 사업이 시행되는 곳은 당연히 그린벨트에 속한 지역이고 또 사업부지의 일부는 문화재구역이기도 해서 관계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서울의 북악산 일원은 명승 67호로 보호받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시공자 쪽은 공지에서 “본 공사는 건축법 제29조(공용건축물에 대한 특례)에 의거 건축협의가 완료된 공사임을 알립니다”라고 했다. 아마도 이 공사에 시민들의 문의와 항의가 많을 것을 예상하여 이 내용을 공지한 듯하다. 이 공지는 그린벨트 안의 건축에 대한 허가와 문화재의 현상변경 허가까지도 다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친절한 안내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본 한 시민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청와대와 인접한 천연자원 명소인데, 그곳에 아주 공공연하게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드러내고 산비탈을 파헤치고 깎아서 군부대를 만들 만한 긴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행정당국으로서는 그린벨트 안에 교육 및 연구시설을 신축할 경우 허가할 수 있다는 법조문을 들이대면서 위법이 아님을 강변할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도 사업부지 중 일부가 문화재구역이라 해도 국방상 필요에 의해서 부득이하게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국방, 그 중요함을 누구인들 모르겠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군미필 정권’으로서는 더구나 그 중요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북악산 산자락의 속살을 헤집고 군대 막사를 지을 정도로 다급한 사정이 있었는가. ‘국방에 무능’한 정권이 청와대 주변에 군 막사를 신축한다, 어떤 느낌을 줄까. 국방의식은 문화재구역에 군 막사를 세우는 만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우려하는 시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데서 더 발양될 것으로 믿는다. 이 공사가 오비이락 격으로 북한의 ‘청와대 불바다론’ 엄포와 최근의 방대한 토지거래 허가구역 해제 조처와 오버랩되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까 걱정된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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