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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착한 부자’가 되는 법 / 신영전

등록 2012-02-08 20:00수정 2012-02-08 20:15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이번 대선의 화두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착한 부자’인 셈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 지 어언 10여년이 흘렸다. 그간 학생들로부터 수많은 질문을 받았고 나름 ‘멋진’ 대답을 해왔지만, 제대로 대답을 못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는 질문 하나가 있다. 그것은 몇년 전 심각한 얼굴로 내 연구실에 들어섰던 한 여학생이 던진 질문이었다. “교수님, 착한 부자는 될 수 없나요?” 나는 그 여학생이 의대생이면서 한해 학교를 휴학하고 이주민 진료와 시민단체 활동을 한 후 복학한, 의과대학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학생이며, 그 질문 또한 무심코 툭 던진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신중하게 ‘멋진’ 답변을 해야 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그러지 못했다.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지”, “부자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많이 나누는 사람이에요”란 대답은 내가 생각해도 구태의연했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대요”라는 성경의 한 구절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도 그 학생의 기대를 채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바보처럼 대답을 얼버무렸고 그 여학생은 애써 아쉬운 얼굴을 숨긴 채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내 교수 인생에 가장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고, 최근 정치권은 갑자기 중요 변수로 등장한 ‘안철수 현상’을 해석하느라 분주하다. 정치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한 시민의 마음으로 볼 때, 나는 이 현상이 5년 전 ‘도덕성과 무관하게’ 부자를 만들어 줄 것 같은 후보를 선택했던 이들의 후회와 반성이 담긴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상당수의 국민들은 ‘안철수’라는 사람을 통해 ‘착한 부자’가 되고 싶은 자신들의 욕망과 염원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나는 실제로 누가 얼마만큼 더 착한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국민은 그래도 ‘부자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착한 부자’가 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의 부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등이 매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행사 기간에 발표되는 ‘나쁜 기업’ 리스트에 오르는 기업의 경영진보다 상대적으로 도덕적이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대다수 서민의 대변자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정치다.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것이 권력이 되는 곳이 바로 정치의 토포스(topos)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은 자신들을 ‘착하지만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부도덕하더라도 부자’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착한 부자’를 만들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의 화두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착한 부자’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착한 부자는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다. 국민 모두가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다. 그들이 정말 ‘착한지’도 모르겠고, 또 어떤 사람이 빌 게이츠가 될 확률은 약 800만분의 1이라는 로또 복권의 당첨확률보다 훨씬 낮다. 몇 년 전, 내 교수 경력에 부끄러운 상처를 남긴 그 사건 이후 나는 나름대로 이 질문과 씨름했다. 하지만 나의 우둔함으로 인해 아직도 ‘완벽한’ 답을 찾아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어느 날 근심 어린 얼굴을 한 학생이 또 내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면 이제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착한 부자’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열심히 일해 ‘함께’ 부자가 되면 되지요. 무슨 선문답 같다고요? 1951년 봉급 수준이 높은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깎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올려서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자는 주장을 받아들여 ‘다 함께’ 부자가 된 스웨덴의 노동자들이 그 예지요. 서로 함께 나누는 협동조합운동으로 가난한 마을을 부자마을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낸 스페인 북부 소수민족 마을 ‘몬드라곤’ 주민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에요.”

어려운 질문으로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그 여학생은 지금 모 대학의 교수가 되어 있다. 그녀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니 학생들에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다행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교수님, 착한 부자는 될 수 없나요?”라는 질문에 이제 교수가 된 그 여학생은 어떻게 대답할까? 그리고 올해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를 꿈꾸는 이들은 또 무어라고 대답할까?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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