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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공무원은 특정정당의 봉사자 아니다 / 이종수

등록 2012-02-22 20:04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우리 헌법은 제7조 제1항에서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이를 근거로 같은 조 제2항에서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을 입법자에게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상의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 요청이 하위법인 일반 법률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정치적 기본권 제한’으로 법제화되고, 우리 사회가 이러한 제한을 그간 당연시해온 데에는 무엇보다 뿌리 깊은 오해가 놓여 있다.

위 헌법 조항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1962년 제5차 개정 헌법을 통해 처음으로 헌법전에 삽입되었고, 공무원의 정치운동을 제한하는 공무원법 규정 역시 1963년 법 개정을 통해 법제화되었다. 불법적인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이들에게서 그 입법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하지만 여기서 의도적으로 간과 내지 은폐되고 있는 점이 있다. 위 헌법 규정이 계수된 독일 바이마르헌법 제130조 제1항은 “공무원은 전체의 봉사자이지, 특정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다”라고, 그리고 현행 독일연방공무원법 제60조 제1항 제1문도 위와 유사하게 “공무원은 전체 국민의 봉사자이지, 특정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직업공무원 제도가 일찍부터 모범적으로 정착된 독일의 경우 지금껏 정당 가입 및 활동과 관련하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행사가 줄곧 허용되었다. 즉 헌법이 요청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해당 공무원에게 자신이 맡은 공직과 관련하여 정당정치적으로 불편부당한 공정한 업무수행을 요청하는 것일 뿐, 업무 외의 사적 영역에서는 일반시민으로서 정치적 그리고 정당정치적인 활동이 폭넓게 보장되고 있다. 예컨대 공무원에게 선거 입후보 및 선거운동을 위한 휴직, 그리고 겸직이 제한되는 선출직 공직에 당선된 경우에 해당 임기 동안의 휴직 및 복직이 보장되는 등 공직의 특성과 공무원의 기본권을 조화롭게 병립시키려고 노력해왔다. 독일의 이러한 입법태도는 무엇보다 복수정당제 아래서 국가행정의 근간이 되는 직업공무원들이 집권세력인 특정 정당, 즉 여당의 맹목적인 하수인이 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 그 강조점이 놓여 있다.

우리의 경우에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는 현행의 엄격한 규제법리를 통해서 오히려 그간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법집행의 문제가 더욱 불거져왔다. 예컨대 공무원의 친여당적 내지 정부옹호적 표현과 활동에 대해서는 이를 당연시 내지 방관하거나 심지어 추후 논공행상하는 한편, 정부비판적인 개인적 표현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정치적 중립성의 위반으로 엄벌한 그간의 법집행 행태가 과연 헌법에서 요구하는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 요청에 마땅한 것인지는 다시 한 번 곰곰이 곱씹어볼 일이다. 정부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바로 야당에 대한 지지를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당제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선거승리와 함께 특정 정당인 여당이 떠맡는다. 여기서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국가와 임기에 의해 제한되는 정부는 서로 구별된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인 공무원은 당연히 특정 정당, 특히 집권여당의 봉사자가 아니다. 입법 당시 의도적으로 “특정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뺐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은 민주적인 국가와 헌법에는 마땅히 충실해야 하지만, 선거에 의해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정부에 충성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모름지기 민주헌법 국가라면 권력자 또는 집권세력이 행하는 헌법적 가치질서의 훼손을 저지하고, 정부가 범하는 여러 오류를 적극적으로 비판·시정하는 기능과 과업이 공무원에게 주어져 있다. 최근 여당 일각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가 제기되자 어느 여권 인사가 내뱉은 말처럼 ‘당·정·청이 한 몸인 나라’에서 공무원을 특정 정당의 봉사자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올곧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행사를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 법리와 민주적인 통치구조의 형성에 더 충실한 태도일 것이다.

일반시민이기도 한 공무원·교사에게도 정치적 선호 및 정당 가입 여부는 종교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기본권적인 선택의 문제일 따름이고, 만일 특정 정당에 가입한 공무원이 정당정치적으로 편향된 업무수행을 행한다면 공무원법상의 관련 규정에 따른 엄중한 제재를 가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공무원·교사들이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비판적 영혼을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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