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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죄책감·열등감을 날려버릴게

등록 2012-02-24 20:13수정 2012-04-18 10:47

걷지 못하는 오빠 성훈(4)군을 위해 세발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3살 정민양이 웃고 있다.
걷지 못하는 오빠 성훈(4)군을 위해 세발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3살 정민양이 웃고 있다.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정민에게.

해가 무척 길어졌어.저녁 여섯 시만 되면 어둑어둑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마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일 거야. 그래서 많이 쑥스럽고 무슨 말부터 꺼내야 될지 모르겠네. 편지가 많이 서툴러도 마음 넓은 네가 이해 좀 해주라. 얼마 전 강원도 감성마을을 찾아갔는데 이외수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셨어. 사람은 본래 태어나기 전에 자기 숙명을 먼저 정해놓고 세상엘 나온대. 그러니까 부모형제들은 내가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거지. 근데 문제는 엄마 뱃속에서 아이가 나오면서 자기가 설정한 것들을 잊어먹는대. 그래서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거야.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속이 뚫리는 듯했어. 열일곱 살부터 줄곧 해오던 고민이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사라져 버렸거든.

고등학교 1학년부턴가, 난 나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어. “난 왜 장애를 갖고 태어났을까” 하는 고민에서 가족관계, 친구관계에 대한 고민이 나무가 기지개를 켜듯 뻗어나갔어. 그러다 너에 대해서 생각했지. 근데 너를 생각한 순간 제일 먼저 들었던 감정은 미안함이었어. 물론 성우, 성태에게도 미안하지만 바로 밑 동생인 네겐 특히 미안했어. 어릴 적부터 너는 오빠인 나를 따라 재활병원에서 엄마 젖도 먹고 자면서 생활했지. 한창 따뜻한 집에서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아야 했는데 내가 그것들을 죄다 빼앗았던 거야. 한때는 나를 옥죄는 죄책감이 싫어 아예 나만 생각했을 때가 있었어. 그것들은 다 네 운명이라고 너에게로 떠넘겨버렸지. 참 철없는 생각이었어. 넌 나를 보며 한심하다고 고개를 흔들었지. 난 그런 네가 얄미웠어. 넌 공부도 잘하고 나보다 항상 깊게 생각하는 것 같아 열등감도 들었어. 그래 인정할게. 이제껏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열등감 때문이야. 하지만 네가 장애 오빠를 둔 동생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시선들 때문에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봤어.

그 모습을 본 순간 커다란 돌이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지. 그리고 정신을 차려서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 네가 아니었다면 난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을 거야. 이젠 열등감이 아닌 열정에 찬 가슴으로 살아갈게.

사랑하는 동생 정민아, 올해는 더더욱 한해가 기대되는 해야. 넌 서울대학교에서, 난 성균관대학교에서 청춘을 보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울렁거린다.우리 한번 멋진 20대의 삶을 보내자꾸나. 살아가면서 아픈 날도 있겠지만 너는 내 자랑스러운 동생임을 잊지 말길.

2012. 2. 11. 아침 햇살 아래에서 오빠 성훈 씀.

축하해주세요! 뇌병변 1급으로 혼자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하기 힘든 홍성훈(20)씨는 동생 홍정민(19)씨의 도움을 받아 올해 성균관대 인문학부에 입학합니다. 정민씨도 서울대 간호대학에 합격해 두 남매가 함께 ‘12학번’ 새내기가 된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는 독자들의 사연으로 채우는 코너입니다.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속 얘기를 추억이 담긴 사진과 함께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서울랜드에서 빅5 이용권(4인가족)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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