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사회부장
사람들은 쉽게 단정지었다
“한나라당에 있다 와서 그래”라고
나도 그런 평가에 동조했었나 보다
“한나라당에 있다 와서 그래”라고
나도 그런 평가에 동조했었나 보다
김부겸 의원과 알고 지낸 지 꽤 됐는데도 가끔씩 이해가 안 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일 때다. 이선실 간첩사건으로 호되게 당해놓고도 그는 엉뚱하게 한나라당과 합의처리를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갈라져서 멱살잡이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한가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란 결국 세 싸움인데, 쯧쯧….” 난 혀를 차고 말았다. 그 뒤로 그는 싸움만 나면 말리려 들었고, 타협안이랍시고 내놓았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론을 내놓았을 때 중뿔나게 혼자만 환영하고 나섰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전설 속의 김부겸’은 전혀 달랐다. 1980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사자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서울의 봄을 열어젖힌 야전사령관이 김부겸이었다. 특히 심재철이 이끌던 학생회가 서울역 앞 10만 군중을 해산하려 들자 “여기서 흩어지면 신군부가 나선다”며 끝까지 싸우자던 게 그였다. 실제 그의 말대로 서울역에서 흘리지 못한 피는 사흘 뒤 광주에서 흘리게 된다.
이런 차이를 놓고 사람들은 쉽게 단정지었다. “한나라당에 있다 와서 그래”라고. 그런 혐의는 그의 마당발 친화력 때문에 더 짙어졌다. 모난 돌멩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보니 반들반들한 조약돌이 된 듯한 느낌 말이다. 사실 여의도 바닥에서 가장 흔한 말이 상생과 통합이다. 희생이나 고뇌는 실리지 않은 채 빈껍데기로만 돌아다니니 가장 진부한 단어가 돼버렸다. 김부겸의 상생·통합도 으레 그러려니 한 거다. 나도 그런 평가에 동조했었나 보다. 그의 대구 출마 소식을 접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그냥 군포에 눌러앉아 있으면 4~5선은 무난할 것이고, 국회의장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옛날 디제이가 자주 하던 말대로,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대구로 내려간다니, “아! 순정이었구나”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부겸은 항시 양쪽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는 경계인이었다. 지역적으로는 경북고를 나온 티케이 성골이면서도 호남이 뿌리인 민주통합당에 몸담고 있다. “그 넓은 민주당사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자가 나 말고 딱 두명 더 있더라”는 게 그의 푸념이었다. 이념적으로는 정통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속 터질 정도로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 또 그는 항상 비주류였으면서도 주류 사회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이 약한 성정을 지니고 있다. 이쪽저쪽 친구가 많은 이유다.
그는 이렇게 늘 이쪽에 완전히 발 담그지도 못하고 저쪽에 몸을 싣지도 못하는 어정쩡함 속에 살아왔다. 좋게 보면, 양극단의 정서와 논리를 이해하니, 이를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아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그에게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힘 있을 때 얘기다. 힘없으면 양쪽으로부터 몰매 맞기 십상이다.
그는 끼어서 눈치보며 국회의원 선수나 늘려가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군포에서 4선을 하면 그건 월급쟁이다. 영화 <친구>를 보니 주인공이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아서 사실대로 털어놓고 중형을 받는다. 나도 더 이상 쪽팔리고 싶지 않다”며 대구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의 도전은 지역감정, 이념의 대립, 소득의 격차 등 우리 사회 모든 분단을 잇기 위한 몸짓으로 읽힌다. 그가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전쟁 같은 선거를 치르면서도, 공감과 치유의 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얼굴 넓적하고, 넉살 좋고, 목소리 우렁우렁한 친구가 나타나 손을 내밀거든, 대구시민들이 따뜻하게 잡아주면 좋겠다.
김의겸 사회부장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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