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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기회의 평등’ 넘어 ‘결과의 보정’을 / 정병오

등록 2012-03-05 19:25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서울대 등 최상위권 대학에 소득 상위 10%에 속한 학생이 소득 하위 10%에 속한 학생보다 4배 이상 많이 재학중이라는 보도(<한겨레> 3월2일치 1·5면)는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수치로 확인시켜주었을 뿐 우리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로 대표되듯, 한국 교육이 내부적으로 많은 비교육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래도 계층 상승을 촉진시키는 기제의 구실을 했다는 면에서는 그래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제 계층 이동의 촉진자 역할마저 거의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한국 교육이 갖는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촉진자 역할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계층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 논란은 있지만, 실제로 교육이 계층 이동의 대폭적인 촉진자 역할을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다만 한국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의 신분제가 무너졌고, 해방 이후에는 논과 소를 팔아 교육을 시켰던 가정의 자녀들이 중산층 이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 경험이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용이 된 사람들의 자녀가 태어나자 이제는 용의 자녀들을 사육을 해서 다시 용을 만들기 위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점차 개천의 뱀의 자녀 가운데서 용이 될 확률은 점차 줄어들어 이제는 웬만해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과정을 촉진시킨 요소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말하는 ‘입시개혁’이다. 즉, 암기 위주의 단편적 지식만을 가지고 학생을 평가하던 ‘학력고사’는 개천의 뱀들에게 유리한 제도였다. 그런데 이러한 암기 위주의 단편적 지식 교육이 갖는 비교육적 요소를 개선하기 위해 사고력과 창의력을 평가하는 수학능력시험과 논술이 도입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지식 중심의 지필평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비교과 활동과 심층면접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의 도입은 분명히 교육적으로 바른 방향이지만 동시에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영향력은 단지 사교육을 많이 시킨다는 차원을 넘어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접할 수 있는 문화자본의 영향력까지를 포함한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난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단순암기형 학력고사가 유리하다고 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용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용 만들기 위해 애쓰는 그 노력을 통제할 길도 현실적으로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이제는 기계적인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부모의 낮은 사회경제적인 상황으로 인해 이 균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기 힘든 아이들을 위해 일정 부분 결과의 보정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즉, 지역과 계층 할당을 더 늘려야 한다.

대학입시에서 이러한 지역과 계층 할당은 결코 역차별이 아니다. 이는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회경제적인 지원을 받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들 간에 존재하는 격차를 어느 정도 메워주어 진정으로 그 아이 속에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해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낮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격차를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자신의 한계 가운데서 최선의 노력을 하기만 하면 사회가 그 한계 너머의 격차를 메워준다는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희망을 잃지 않게 하자는 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물론 이 말은 한국 교육의 또다른 이면을 보지 못한 결과이긴 하지만, 미국의 하위계층이 교육을 포기함으로써 절망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한국도 지금까지는 많은 국민들이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꿈을 붙잡고 있기에 교육열과 동시에 희망을 어느 정도 붙들고 있지만, 이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교육열과 희망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이는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아직 국민들이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꿈에 대한 불씨를 가지고 있을 때 지역과 계층 할당 확대로 이 불씨를 키워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이 문제 많은 교육 가운데서도 마지막 희망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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