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정치·사회 에디터
‘홍보국장 이진숙’이 ‘기자 이진숙’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10년 전, 진실보도를
위해 회사의 지시를 어겼던 것처럼
돌아왔으면 좋겠다. 10년 전, 진실보도를
위해 회사의 지시를 어겼던 것처럼
“지금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던 ‘종군기자 이진숙’과 징계 예고의 온갖 협박으로 점철된 서슬 퍼런 회사 특보를 찍어내는 ‘홍보국장 이진숙’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럽습니다.” 45일째 파업중인 <문화방송>(MBC)의 한 기자가 지난주 노조의 ‘총파업 특보’를 통해 같은 회사 이진숙 홍보국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비단 문화방송 기자들만의 당혹감은 아닐 게다. 10년 전 문화방송 뉴스에서 ‘바그다드의 이진숙’을 봤던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전 때, 그는 진실보도를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를 누볐다. 한국 기자들이 모두 철수한 상황에서, 그는 촬영기자 없이 직접 6㎜ 소형카메라를 들고 미군의 공습과 바그다드의 함락 소식을 전했다. 1991년 걸프전에 이어 다시 한번 현장을 지킨 그를 두고, 당시 ‘살아 있는 기자정신’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세월이, 아니면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 것일까?
엊그제 만난 이진숙 국장은 “예전의 이진숙과 지금의 이진숙은 같다”고 말했다. “나는 기자였고, 지금도 기자다. 사실이 아니면 믿지 않고, 거짓이 사실로 둔갑해 돌아다니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노조가 김재철 사장과 관련해 허위 주장을 하는데, 이를 회사 구성원들이 그대로 믿고 언론이 보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는 하나의 예로 김 사장의 ‘호텔 마사지업소 법인카드 결제 건’을 들어 길게 설명했다. 자신이 확인했는데, 김 사장은 마사지업소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처럼 노조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노조가 김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으니,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머지않아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국장과 대화하면서 받은 느낌은 그가 ‘작은 사실’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러다 보니 ‘큰 진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대변인이라는 홍보국장 직책에 함몰된 탓일 수 있다.
기자회장과 노조 홍보국장 해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재산 가압류 신청, 파업 인력의 계약직 대체 등 회사 쪽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고 있지만, 파업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 본사에서만 파업 첫날 550명이던 참여 인원이 14일 77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뉴스 앵커를 비롯한 중견 간부들이 징계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직을 사퇴하고 있다. ‘국민 예능’ <무한도전>과 ‘국민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피디들도 동참하고 있다. 12일부터는 전국 18개 계열사 노조들이 파업에 가세했다.
왜일까? “이번 파업은 공정방송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한 김재철 사장에 대한 분노의 표출인 동시에 이젠 기자로서 자긍심을 되찾겠다는 절규다.” 파업에 나선 기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들은 청와대가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김 사장이 퇴진하지 않는 한 파업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판단을 잘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게 사람이다. 다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애초 판단을 되돌아보고, 착오나 실수가 발견되면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2003년 이라크전 때, 이진숙 기자는 취재도 중요하지만 생명이 더 중요하니 현장에서 철수하라는 회사의 지시를 어기고 바그다드로 향했다고 한다. 이진숙 국장이 ‘10년 전의 이진숙 기자’로 돌아오면 좋겠다. 그리고 문화방송이 공영방송으로서 제구실을 다하는 데 힘을 보태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안재승 정치·사회 에디터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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