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사회학
여성공천 할당은 약자와
소수자 배려라는 지구촌
사회의 지난한 개혁과제
소수자 배려라는 지구촌
사회의 지난한 개혁과제
예상대로(?) 여성들에게 지역구 경선의 벽은 높았다. 국민경선이라는 새로운 방식은 분명 밀실공천보다 민주화된 방식이다. 그런데도 경선의 결과는 정치 신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여하여 진정한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은 2012년의 한국 총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생존의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최후의 교두보가 정치참여이고 참여를 통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지구촌 유권자의 공통된 관심이다. 그런 절절한 열망에서 출발한 국민경선 결과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산술적 평등론에 입각한 참여 확대 방식인 경선투표, 여론조사 등은 실제로는 소수자들이나 개혁과 진보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더 불리한 제도로 드러난다. 자유경쟁과 경선, 여론조사 등의 참여형 공천제도가 여성과 정치 신인에까지 음덕을 미치려면 일반 유권자가 공화국의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소수자들의 그것처럼 ‘초대를 통한 참여’로 물꼬를 트는 것이 보통이다. 국회의사당에 여성 화장실이 늘어나고 여성도 비서가 아닌 의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도 비례대표 여성 50% 공천할당제가 없었다면 요원했을 일이었다. 그것은 여성운동단체의 끊임없는 요구, 세계인권선언의 내실을 만들어 내려는 지구촌 사회의 지향,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성을 해소하고자 하는 뜻있는 남성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미래지향적인 합의가 만들어낸 도약이었다.
같은 논리가 왜 지역구 여성공천에서는 적용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민주통합당이 출범하면서 가장 가시적인 개혁구호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약속과 여성 지역구 15% 공천할당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약속이 상호충돌하면서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여성은 경선에 내몰면 거의 탈락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성들은 전략공천을 주장하였고 그 주장은 마치 국민공천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곡해되었다.
이럴 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심의민주주의의 지혜이다. 국민공천권이 단지 경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공천 할당은 약자와 소수자 배려라는 지구촌 사회의 지난한 개혁과제이다. 개혁에 대한 가치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은 산술적인 경선을 하는 것보다 더 상위의 개념인 것이다. 이런 깊이 있는 성찰을 하기도 전에 여성 지역구 공천할당제는 전직 비례대표 출신이 많다는 점, 특정 대학 출신이 많다는 점만을 앞세워 남성 정치 신인의 앞길을 막는 무임승차권으로 폄하되었다. 그 결과 여성과 여성을 분열시키고 새로이 정치권에 입문하려는 남성 정치인과 여성을 대립시키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개혁성 전체가 빛이 바래게 되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여성 전략공천은 개혁과제의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 개혁공천은 당선이라는 결과에 대한 배려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남은 공천을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지금 독일에서는 정치권은 물론 기업에서도 여성 고용할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왜 하필 여성인가? 여성은 ‘소수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여성 우대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서 자연 정치적으로 과소 대표되었던 다른 약자들의 문제도 표면화되고 있지 않은가? 여성은 견고한 기득권의 카르텔을 깨는 전사인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여성전사인 것은 아니다. 단지 누군가의 딸이기 때문에, 아내이기 때문에 할당제도 필요 없이 산봉우리에 오를 수 있는 여성까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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