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경제부장
물가상승세가 수치와 달리 실제론
꺾이지 않았고 연쇄적 임금상승을
불러올 수 있는 중요한 국면에 있다
꺾이지 않았고 연쇄적 임금상승을
불러올 수 있는 중요한 국면에 있다
지난해 이맘때다. 휘발유값이 급등하자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정부가 나섰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원가 계산까지 해보겠다고 엄포를 놨다. 지경부는 기름값을 가지고 6개월을 씨름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선택한 방법은 정유사들 손목을 비틀어 한시적으로 가격을 100원씩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휘발유값이 리터당 1800원대 후반이었다.
한가지 이상한 게 있다. 지금 휘발유값은 이미 2000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국 평균은 2030원가량이지만 서울 도심과 강남권에선 23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2500원까지 갈 태세다. 경유값도 마찬가지다. 2~3년 전 1000원대 초반이던 것이 1800원대 중반을 오가고 있다. 그런데도 기름값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하지만 정부 또한 예전처럼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아니다.
둔감해진 것일까? 아니면 체념한 것일까? 어떤 경우든 중요한 것은 정부나 국민 모두가 이런 물가 상승세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잘못된 인식이 숨어 있다. 한때 5%에 육박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둔화됐다는 것과 기름값 상승은 국내 요인이 아닌 외생 변수이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도 물가 얘기만 나오면 “외부적인 변수 때문”이라는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수요 관리를 못한 게 아니라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비용 측면의 인플레이션이란 얘기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 국내 시각으로만 본다면 외부 변수지만 전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달러가 너무 많이 풀리면서 발생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자유롭게 들고나는 국내 경제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가상승률이 둔화되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높은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것을 물가 안정의 근거로 들이대기에는 성급해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면 기름값만 아니라 모든 물가가 올랐다. 특히 서민과 중산층이 체감하는 물가는 20% 이상 올랐다. 그리고 생활물가는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다. 연료·식품·생필품값이 오르고, 그다음 서비스요금이 올랐다. 그러면 뭐가 남겠는가. 결국 대폭적인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요즘 직장인들은 실질소득의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 이달 초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제시한 올해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은 2.9%다. 한국은행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3.3%보다 낮다. 이대로라면 실질소득 감소가 불가피하다. 물론 정부는 별다른 물가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쌓이고 쌓인 직장인들의 불만이 언제든지 터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물가 상승세가 수치로는 둔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연쇄적인 임금 상승을 불러올 수 있는 중요한 국면에 있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1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12월 대선을 생각하면 기껏해야 8개월 남짓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포퓰리즘과 싸우겠다고 전의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 생활이 주름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일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 물가 관리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물가는 오르고 실질소득은 줄어드는데 정부가 복지 확대 정책마저 외면한다면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장차 복지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걱정할 일이고 선거로 구성될 차기 정부의 몫이다. 그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서민과 중산층의 어려움을 살피는 게 남은 임기 동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정남기 경제부장jnamk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