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사회부장
당장 민간인 불법사찰의 경우도
간부들은 물론 수사 검사들까지
직무유기 혐의로 책임을 물어야
간부들은 물론 수사 검사들까지
직무유기 혐의로 책임을 물어야
신문사 부장으로서 하는 일 중 하나가 후배 기자들이 보낸 기사를 고치는 것이다. 웬만하면 틀린 글자만 잡고 넘기지만, 가끔씩 원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뜯어고치기도 한다. 그러면 꼭 따지고 드는 후배들이 있는데, 짜증이 나도 꾹 참고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고? 기사 끝에 붙어 있는 기자 이름 때문이다. 그 기사에 따르는 모든 영광과 오욕은 오롯이 그 기자의 몫이므로.
경상북도 문경 산골 출신인 장진수씨가 나라를 뒤흔들 결심을 하게 된 계기도 그 이름 때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이름없는 하급 공무원으로 묻혀가지 못하고, 장진수라는 이름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공무원에서 파면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검사한테 들은 얘기다. 전국 각지에서 온 검사들 몇몇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 검사 “아니, 무슨 수사를 그따위로 해서 검찰 개망신을 시켜”라고 한참을 떠들었단다. 앞자리에 앉은 검사가 얼굴이 벌게지면서 냉수만 벌컥벌컥 들이켜더란다. 옆자리 검사가 쿡 찌르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 사건 주임검사야.” 주임검사란 사건을 수사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공소장을 쓰는 검사다. 해당 사건의 최종 책임자인데도 이상하게 존재감이 없다. 큰 사건일 때는 부장검사가 맡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평검사 몫인 주임검사는 실무자에 불과하다. 그저 던져진 사건만 열심히 팔 뿐, 판단과 결정은 윗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검사는 각자 독립된 국가행정관청으로 규정돼 있다. 연수원 교재에도 “검사는 지구에서 가장 객관적인 관청”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현실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그저 ‘검사동일체’ 하나뿐이다.
사실 검찰 고위층은 ‘베팅’을 해볼 만하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수사를 요리하면 그만큼 돌아오는 반대급부가 크다. 설사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미 누릴 만큼 누렸으니 옷을 벗고 나와도 전관예우의 격이 달라진다. 위험은 적고 대가는 크다.
하지만 평검사는 다르다. 설사 한두번 인사상 특혜를 받더라도 세상이 바뀌면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된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남아 있는 날이 순탄치 못하다. 위험은 크고 대가는 적다.
그런데도 평검사들이 정치적 요구에 순응하는 데는 그들의 익명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론도 주목하지 않고 조직 안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책임을 묻는 데서부터 검찰 개혁은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민간인 불법사찰의 경우도 간부들은 물론 당시의 수사 검사들까지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동안 나온 얘기만 봐도 장진수씨는 “대포폰 통화 내역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수사 검사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더니 더이상 추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영호씨도 “검찰이 수사 때 자료 파기했냐고 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평검사들에게 “왜 그랬는지” 책임을 추궁할 때에만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윗선은 이미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한겨레>는 지난 금요일치에 특종을 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검찰 고위층의 압력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신경식 당시 1차장은 “수사를 하다 보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수사팀에서도 A안, B안 만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검사들이 자발적으로 여러가지 수사 방안을 만들었고, 자신은 그저 선택을 한 것뿐이라는 논리다. 미리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놓은 혐의가 짙다. 그러니 그 답을 해결해줄 사람은 평검사밖에 없는 것이다.
중수부 폐지 등 온갖 검찰개혁 방안들이 얘기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은 결국 자신이 책임지는 시스템이 먼저 서지 않으면 다 헛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의겸 사회부장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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