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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고속철도 ‘민간개방’ 재고해야 / 이선하

등록 2012-04-02 19:46

이선하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이선하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KTX가 초기부터 민간투자로
진행되었으면 민간업체가
약 18조원을 지불하여야 한다
2014년 개통 예정인 호남고속철도에 대한 정부, 정치권, 코레일, 민간업자 간의 논쟁이 뜨겁다. 국토해양부는 호남고속철도 수서~평택 고속철도 구간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침을 결정하고 정부 제안요구서를 4월 총선 이후에 고시키로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100년 역사의 철도 운영에 민간 개방의 물꼬를 트게 하는 것이다. 물론 ‘경쟁체제’에 의한 민간개방, 민영화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여기에 ‘철도’라는 용어가 들어가면 상황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첫째, ‘안전’ 문제이다. 철도는 ㎞당 200억~3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는 대규모 ‘장치산업’이다. 열차 차량, 신호체계, 선로 운영, 차량 유지·보수, 발권 시스템, 운전인력, 관리인력 등 수천가지의 요소가 시계의 톱니바퀴같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최근 ‘사고철’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일련의 사고 역시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 중 하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여 발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철도 운영에는 첨단의 기술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숙련된 경험을 갖는 인력에 의한 운영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처음으로 철도간선사업에 진출하는 민간사업자는 본사 관리조직, 승차권 발권 시스템, 차량 유지·보수 시스템, 별도 운영인력 등을 새롭게 구축하여야 한다. 이는 기존 철도사업자인 철도공사의 시설과 장비를 활용할 수 있음에도 중복투자를 해야 함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안전 측면에서 많은 취약점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최근 발생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온세역의 열차 충돌사고로 인한 51명 사망, 700여명 부상과 캐나다 여객열차 탈선사고로 인한 3명의 기관사 사망, 45명 부상 등의 참사가 모두 이들 나라의 철도 민영화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둘째, ‘특혜’ 문제이다. 만일 케이티엑스(KTX)가 초기부터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면 민간이 대략 50%를 부담하는 민투법에 의해 경부선과 호남선 약 35조원의 투자비 중 민간업체가 약 18조원의 투자비를 지불하여야 한다. 물론 철도공사를 포함하여 2개 사업자로 볼 경우에도 약 9조원은 투자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재 민간사업자는 경부·호남 고속선에 모두 투입되면서도 한푼의 건설투자비 없이 초기 투자비 4000억대로 가볍게 진입하면서 연간 1000억대 이상의 엄청난 흑자를 맛보는 특혜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는 정부 재정운영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철도공사는 매년 공공노선 운영을 위해 4000억~5000억원의 운영손실을 겪고 있으며, 그나마 흑자노선인 수도권 전철과 케이티엑스 운영수익으로 적자폭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업체가 낮은 초기 투자비로 제공하는 10%의 운임 할인을 미끼로 대다수의 케이티엑스 승객을 처리하게 될 경우, 눈덩이처럼 커지게 될 철도공사의 적자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셋째, ‘운영’ 문제이다. 전세계적으로 동일운행 구간에 경쟁사업자가 들어오는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하나의 노선에 두 개의 운영회사가 별도의 차량 편성, 차량 유지·관리, 운행 관리, 승차권 판매 등을 담당하게 되며, 따라서 두 배의 관리 시스템과 운영인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승객은 항공권 구매와 비슷하게 여러 곳의 창구 또는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여 시간과 운임을 알아보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여야 한다. 또한 열차가 고장이 나면 두 운영기관 간에 제대로 된 협조가 어려우며, 신속한 사고 처리에도 많은 장애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또한 철도는 수요가 시간대나 요일별로 상이하여 수요에 적합한 차량 확보와 편성 및 운행계획이 중요하다. 그러나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민간사업자와 코레일은 적은 편성으로 승객이 많은 시간대에만 서로 열차를 투입하려고 하고, 수요가 적은 시간대에는 운행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승객의 탑승 권리에 피해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의 고속철도는 남북 및 중국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을 대상으로 뻗어나가는 장대한 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철도차량 전문 대기업, 선로건설 전문 대기업, 철도운영을 전담하는 코레일 등이 서로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시공 전문 대기업들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고속철도 운영에 뛰어든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옳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선하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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