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정치·사회 에디터
정치공학적 셈법을 떠나, 이번에
기권한 45%의 유권자가 대선에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한다
기권한 45%의 유권자가 대선에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첫 투표권을 행사한 선거가 1985년 치러진 ‘2·12 총선’이었다.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의 감시 때문에 술자리에서조차 정부를 비판하는 얘기를 하려면 먼저 주위부터 둘러봐야 했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선거 결과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가져가기 위해 각종 술수를 동원했다. 선거일을 추운 겨울날로 잡은 것은 투표율을 낮추려는 꼼수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심판은 무서웠다. 투표함이 개봉되자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4년간의 정치활동 규제에서 풀려난 야당 정치인들이 투표일로부터 불과 25일 전에 창당한 신민당이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2중대’로 불리던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이 되었다. 2·12 총선은 이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어 6월 시민항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때 투표율이 84.6%였다. 역사학자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2·12 총선을 두고 “평소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민초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선거혁명”이라고 정의한다.
첫 투표 이후 이번 4·11 총선까지 7차례의 국회의원 선거, 5차례의 대통령 선거, 그리고 5차례의 지방선거, 또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등 20여차례의 선거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식상한 얘기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최선이 보이지 않으면 차선이라도 찾아야 하고 최악을 피하려면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게 올바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과는 달리 투표율은 계속 하락했다. 총선을 기준으로 80년대 후반 70%대, 90년대 60%대, 2000년대 들어서는 50%대로 떨어졌고, 4년 전 18대 총선에선 40%대까지 추락했다.
정치학자들은 우리나라의 투표율 급락 현상을 여러 요인에서 찾는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예전에 비해 투표 열망이 식었다는 해석부터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무당파가 늘었다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투표율 하락 추세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일면 수긍이 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주요 국가 투표 현황 자료’를 보면, 가장 최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를 기준으로 미국(47.5%)이나 일본(58.6%)처럼 투표율이 낮은 나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많다. 의무투표제를 도입한 오스트레일리아(이 나라에서는 투표를 하지 않으면 우리 돈으로 2만~6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데, 투표율이 보통 95%에 이른다)는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가 복지와 교육 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따라가고자 하는 스웨덴은 1945년 이후 줄곧 80%를 넘었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도 지난 50여년간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4·11 총선의 최종 투표율이 54.3%로 집계됐다. 18대 총선보다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가 기권을 한 것이다. 국민에게 친숙한 유명인들이 파격적인 약속을 내걸고 투표 독려를 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투표 참여 여론이 높았던 점에 비춰보면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8개월 뒤인 12월19일에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고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정치공학적 셈법을 떠나, 대선에서는 이번에 기권한 45%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으면 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투표는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권리이다. 또 문제 해결의 최종 해법은 되지 못하더라도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의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안재승 정치·사회 에디터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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