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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구원 요청 절규에 반응하지 않는 사회 / 조희연

등록 2012-04-16 19:38

조희연 민교협 공동대표·성공회대 교수
조희연 민교협 공동대표·성공회대 교수
벼랑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계속 구원 요청 신호를 보냈고
아무 반응 없는 사회를 원망하며
생명의 끈을 놓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4월1일 수원의 한 여성이 납치된 가운데서도 112에 신고했으나 경찰이 이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통상적인 살인 및 검거사건으로 치부되어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이후 112의 운용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며 그 과정에 연루된 경찰들이 얼마나 불감의 존재였는지가 드러났다. 최근에는 유가족들이 112 신고전화 녹음파일에 담긴 피해 여성의 음성을 직접 들음에 따라, ‘살려달라’는 애원, 끔찍한 비명, 거친 테이프 찢는 소리 등이 무려 7분여간이나 흘러나왔음이 확인되었다. 범인의 목소리까지 흘러나오는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가족들은 “경찰도 살인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죽어가며 애타게 구원을 요청하는 그 절박한 목소리를 무심코 지나치거나 무시하고 있던 그 경찰 상황실과, 구원 요청의 절규를 하며 죽어가는 22번째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소리를 무심코 지나치는 우리 사회라는 공간이 얼마나 흡사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2009년 쌍용자동차가 2646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을 때 77일간의 처절한 투쟁이 이루어졌고, 이로써 ‘무급휴직자 1년 후 복직’이라는 ‘8·6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쌍용자동차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벼랑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사회에 계속 구원 요청의 신호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반응이 없는 사회를 원망하며 생명의 끈을 놓아가기 시작했다. 생활고와 스트레스로 부인이 아기를 유산한 가운데 회사 쪽의 정리해고 계획이 발표된 2009년 4월8일 첫 자살이 시작된 이후, 지난 3월30일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22번째로 자살했다. 그러나 이 처절한 목소리를 우리는 그냥 무심코 지나치고 있다.

우리는 폭력 하면 강경대·박종철의 죽음을 몰고온 경찰폭력, 용산참사 진압 과정에서의 폭력만을 연상한다. 이는 당연히 물리적 폭력이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의 자살은 우리의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작동하는 독특한 ‘구조적 폭력’이 만들어낸 ‘구조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 실제 잔인한 파업 진압 과정에서의 상흔과 트라우마, 피를 말리는 생계고통, 마치 블랙리스트처럼 따라다니며 취업을 방해하는 낙인, 정부와 회사의 압박과 무대응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과 좌절, 분노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물리적 폭력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가고 그 폭력에 신음하면서 보내는 구호 요청의 신호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구조적 폭력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과 순응의 자세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당연히 이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구조적 타살이며 사회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존 국가와 자본의 ‘구조’가 갖는 폭력성과 그 비인간성도 문제이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미 공감의 능력과 감수성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년 한진중공업 사태 때 고공농성을 하던 김진숙을 지켜보면서, 한 사회가 얼마나 인간적인가 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의 처절한 절규가 얼마나 많이 누적되어야 변화가 시작되는가에 의해 측정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309일간이나 되는 시간이 흘러서야 김진숙의 죽음을 무릅쓴 고공크레인 투쟁에 반응했다. 비정하게도 말이다. 이제 쌍용자동차의 죽음의 절규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언제 반응할 것인가.

정리해고의 고통으로 한 기업에서만 22명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그런 사회, 그에 대한 인간적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그런 사회는 이미 병들어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죽어가고 있다. 이 죽어가는 사회를 향해, 벚꽃이 흐드러진 봄나들이길, 덕수궁 돌담길에 이제 추모의 분향소가 설치된다. 4월21일에는 쌍용차 정문 앞에서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린다.

조희연 민교협 공동대표·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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