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석 강남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최근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인 이자스민 당선자에 대한 온갖 험한 막말과 비방이 쏟아지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증폭시키는 이러한 공격은 편협하고 독선적인 한국인의 추한 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국제적인 망신일 뿐이다. 한국인들이 한국에만 거주하는 게 아니다. 외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도 현재 750만여명에 이르고 있어 중국·이탈리아·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 네번째인 재외동포 대국이며, 본국 인구 대비 국외교민 비율로는 이스라엘 다음인 두번째이다. 이젠 세계 어느 오지를 가더라도 그곳에서 살거나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유난스런 순혈주의에 대한 망상과 ‘주변인 콤플렉스’는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인종차별주의적인 망동과 망언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저개발 국가들에서 유입된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무자비한 인권유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외국에 사는 동포들도 자신도 유색인종이면서 흑인이나 다른 유색인종을 멸시와 차별로 대하는 일이 많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에서 주요 타도 대상이 다름 아닌 한국인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 고객이 흑인들인 흑인동네에서 장사하면서도 지역 흑인들 행사 협조에는 극도로 인색하고 일이 끝나면 고급차를 몰고 백인들 거주지에 있는 집으로 향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20세기 후반부터 밀어닥친 세계화의 열풍은 전세계에 파급되어 어느 곳이나 다문화·다종족 사회로 변모시켜 가고 있다. 세계화는 국경을 넘어선 상품과 서비스, 자본의 유통만이 아니고 인종과 문화의 유통도 포함한다. 미래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문화적 다양성, 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최소화하고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가 가지는 다양성과 특수성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다문화주의의 기본 요소인 다양성과 관용성은 다문화주의 정책의 핵심이다.
최근 경제 불황과 실업률의 증폭은 유럽 곳곳에서 강경 우파 정권들을 탄생시켰고 이들에 의한 다문화주의 비판들을 과대포장하여 국내에서도 심지어 학자들까지 마치 다문화주의가 운명을 다한 듯이 떠들고 있다. 살림살이가 궁색해지면 마치 “쌀독에서 인심” 나듯 외국인들에게 너그러워질 수가 없다. 특히 정치인들은 팽배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하고 결국 분노의 화살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에게 향한다. 인권보호나 사회 구성원 간의 평등은 사회복지 정책 같은 물질적 혜택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평등은 다양한 구성원들로 형성된 각 차이 집단들을 공평하게 정치 과정에 참여시키고 소수자들을 포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캐나다는 2001년 홍콩에서 태어나 피난민으로 캐나다에 왔던 에이드리엔 클라크슨과 2005년 아이티 출신의 피난민이었던 흑인 여성 미카엘 장을 연방총독에 잇달아 선임하였다. 내각책임제하의 국가원수이긴 하지만 두 명의 소수민족 여성들을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에 연이어 선임한 것은 캐나다가 만인에게 평등한 기회의 나라임을 온 세계에 공언한 셈이다. 선진국이란 단순히 국민소득의 증가만이 아니라 이 정도의 고양된 시민의식과 국격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선진 각국들이 왜 고용시장 악화 등 갖가지 불평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민을 유입하고 특히 젊은 고급 숙련노동 이민자들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결국 현행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미래 자신들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출산장려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한국도 생산가능인구의 지속을 위해 2020~50년 사이 전체 인구의 14%(643만명)를 외국인 유입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유엔은 전망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는 우리 모두가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공간과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다문화 집단이 우리 사회에 쉽게 적응하고 통합될 수 있도록 다문화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인권과 자유의 외연을 확대하고 문화의 수직성을 배격하는 데서 출발한 다문화주의는 역사의 물결이기 때문에 부침은 있을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영석 강남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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