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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학교폭력: 다윈 대 마르크스 / 김의겸

등록 2012-04-22 19:15

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아이들의 잇단 투신·죽음
‘무한경쟁’ 시스템 탓만 하기보다
구성원간 ‘협력 조건’ 만들어내야
다윈: 이보게 카를! 저 아래 코리아 좀 보게나. 중학생이 또 떨어졌어. 다 학교폭력 때문이라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마르크스: 좀 복잡한 얘기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감소하네. 잉여 노동인구는 이른바 산업예비군으로 전락하면서 생산과정에서 추방당하지. 자본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한국은 그 공포와 불안이 특별하고, 사람을 극한으로 내모는 입시경쟁은 그 결과지. 자본과 국가는 그런 체제를 폭력적으로 유지하고 있어. 이런 억압체제에서 어린 학생들이 폭력을 익히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거지.

다윈: 자네답군. 하지만 애초 인간의 유전자에 폭력성이 내재돼 있는 건 아닐까? 특히 중학생은 2차 성징이 뚜렷해지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시기이네. 짝짓기와 먹잇감을 놓고 벌이는 수컷들의 서열경쟁! 그게 본질 아닐까?

마르크스: 그렇다면 인류의 전 역사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 사이에 폭력이 지배적 문화여야 하지 않나? 하지만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1928년 사모아의 청소년을 살펴본 결과는 다르네. 이들 사이에는 경쟁과 계급이 없고, 성적 질투심마저 없었다고 하네.

다윈: 난 바로 그 점이 자네 이론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하네. 전형적인 성선설이지. 사회적 관계와 제도만 변화시킨다면 인간 본성 또한 바꿀 수 있다는 건데. 그건 수백만년 동안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 본성을 가볍게 보는 거네. 그런 순진한 생각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낳았나? 스탈린이나 마오쩌둥, 폴 포트의 실험이 모두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서 비롯됐지. 사모아 섬 얘기만 해도 ‘환상’이었음이 최근 연구 결과로 드러나고 있네. 사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디엔에이를 복제하기 위해 강간과 약탈, 폭력을 휘둘러온 선조들의 생존전략 덕에 지금 존재하는 거네. 우리는 다들 혈관 안에 조금씩 더러운 피가 섞여 있는 거지.

마르크스: 아니, 그럼 가만있자는 건가?

다윈: 아, 미안하네. 난 단지, 아이들 사이의 경쟁 본능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자는 거지. 옛날에는 주먹과 돌도끼로 싸우던 아이들이, 이제는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을 가지고 서로 다투네. 하지만 그런 경쟁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다시 ‘원시’로 돌아가자고 울부짖는 걸세. 그러니, 이런 아이들의 피를 식히기 위해서는 권투 같은 격렬하면서도 순위를 매기기 쉬운 스포츠가 필요할 것 같네. 그게 아니면 ‘나는 가수다’ 식의 노래 경연대회를 열든지 말이야.

마르크스: 자네도 순진하긴 마찬가지구먼. 공부 외의 다른 공간이 인정될 것 같은가. 한국인들은 모두 무한경쟁의 무한궤도 위에서 채찍질을 당하며 내달리고 있네. 거기에서 이탈하는 순간 죽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못 뛰어내리는 걸세. 그런 경쟁은 이제 일국의 차원을 넘어서, 지구 단위로 확대되고 있네. 근본적으로 지금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쟁의 사슬을 끊지 않는 한 방법이 없어.

다윈: 다시 또 그놈의 시스템 탓이군. 이제 그만 유토피아적 사고는 버리게.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이해하고, 이를 기초로 정책을 생산해내야만 좌파의 소생이 가능하다고 보네. 물론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협조하는 게 유리하다는 걸 진화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게 호모 사피엔스일세. 여기서 진보진영의 역할은 그런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협력이 증진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난 자네가 한국의 제자들에게 내 얘기를 전해줬으면 좋겠네. 자, 이제 그만 펍에 가서 맥주나 한잔하세.

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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