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공정방송 수호세력은
머리를 맞대고
집단적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집단적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토요일 오후에 더 짜증이 난다는 이들이 있다. 삶의 활력소였다는 <무한도전>의 빈자리 탓이다. <개그콘서트>는 그나마 전파를 타고 있다. 하지만 박성광의 팔뚝에 새겨진 파업 피디 이름은 개그를 개그로만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국내 최대 지상파 두 곳이 파업을 한 지 오래다. 문화방송은 12일 뒤면 파업 100일을 맞는다. 하루라도 티브이 시청을 피하기 힘든 이들에게 중대 사건이다.
시청자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올라가지만, 이런 상황을 풀겠다고 달려드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방송정책 담당 기관이나 방송사 관리감독 기구가 비상한 자세로 해법 모색에 나서는 게 온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별다른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화방송>(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이번 파업을 두고 한 일이라곤 야당 쪽이 낸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부결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여당 이사들은 김 사장의 법인카드 부정사용 의혹에는 꿈쩍도 안 하더니, 김 사장의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인사안은 덥석 받아들였다. ‘방문진은 사장 경호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방송 정책과 규제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위도 비슷하다. 방문진 이사장을 불러 해법을 찾아보자는 야당 상임위원 주장에 이계철 방통위원장은 ‘노사간 문제’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전부다. 시청권을 유달리 강조해오던 보수언론도 조용하다. ‘방송사 노조와 민주당이 야합한 정치파업’(<조선일보> 3월9일치 사설)이라는 악의적 왜곡 말고는 파업 보도를 찾기 힘들다.
여권과 보수언론의 무관심에서 이번 파업의 본질이 뭔지 추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4년 전 <한국방송>(KBS) 이사회가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해임 의결하기 이틀 전 야당 의원들에게 “한국방송 편향을 고치겠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사회가 해임안을 통과시킨 직후 당시 한국방송학회장이던 중도 성향의 언론학자 한진만 교수는 “(정 사장 해임 주도자들은) 공영방송을 독재정권의 시녀 노릇 하던 시절로 돌리려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그 뒤는 긴말이 필요 없다. 낙하산 사장→청와대 조인트→낙하산 사장 친정체제 공고화→기자·피디 재갈 물리기 등의 경로를 거쳤다. ‘정권의 시녀’라 해도 이의를 달기 힘들 만큼 공영방송의 비판 기능은 거세됐다.
권력 편향적인 공영방송에 조·중·동 종편까지. 보수세력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송 구도다. 이런 지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파업에 입을 꾹 다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파업을 노사문제로 고립시키고, 사쪽은 강경대응으로 노조의 힘을 최대한 빼라.’ 파업 이후 여권과 방송사 쪽 움직임을 보면 이런 전략적 목표가 세워진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엠비시 상층부나 방문진 이사들 가운데 방송보다는 노조 죽이기에만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한 문화방송 내부 인사의 진단이다.
방송을 굴종시키려는 세력과 방송의 독립·공공성을 지키려는 세력의 싸움이 이번 파업의 본질이라면, 방송사 노조원들만 그 부담을 지는 것은 부당하다.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든 공정방송 수호세력은 머리를 맞대고 집단적인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방송을 장악하려는 쪽은 하나의 목표로 똘똘 뭉쳐 있는데, 그걸 막겠다는 세력의 움직임은 개별적이고 효율도 낮아 보였다. 다행히 그제 야당과 시민사회 언론단체들이 공동정책협의회를 꾸렸다고 한다. 큰 싸움에 걸맞은 전략과 실행방안이 나왔으면 한다.
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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