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이익이 아니라 이념이 문제다 / 대니 로드릭

등록 2012-05-08 19:36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금융위기 뒤 경제학자들
은행 잘못 정치인 탓 돌렸지만
나쁜 이념 합리화한 책임 져야
정치학에서 가장 널리 믿어지는 이론은 가장 간단한 것이다. 가장 힘센 자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금융규제는 은행들의 이익이, 보건정책은 보험회사들의 이익이, 조세정책은 부자들의 이익이 추동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마찬가지다. 대외정책은 국익에 의해 우선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해진다. 다른 나라에 대한 배려나 세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국제협약은 미국의 이익, 그리고 갈수록 부상하는 주요 강대국들의 이익에 연동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정책은 통치자와 그 측근들 이익의 직접적 표현이다. 이는 어떻게 정치학이 그토록 자주 볼썽사나운 결과들을 양산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아주 강력한 내러티브 구조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완벽하기는커녕 때로는 틀리기도 한다. 이익은 고정되거나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다. 이익 그 자체는 이념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세계는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신념 말이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애쓰는 기업을 상정해보자. 한 전략은 노동자 일부를 정리해고하고 비용이 더 싼 아시아로 생산지를 옮기는 것이다. 이런 방식 대신, 이 기업은 기술훈련에 투자할 수 있고, 더 충성심 있고 생산력 있는 노동력을 구축해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그 비용과 편익 계산에 따른 상이한 시나리오에 대한 일련의 주관적 평가다.

당신이 가난한 나라의 독재자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국내외의 위협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강력한 수출 주도형 경제를 구축하는 건가? 아니면, 안으로 방향을 돌려 거의 다른 모든 사람을 희생시켜 당신의 친구와 다른 측근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인가? 동아시아의 권위주의 통치자들은 첫 전략을 포용했다. 반면 중동의 독재자들은 두번째 전략을 택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상이한 생각을 했다.

이런 사례들은 계속 나열할 수 있다. 그리스의 목줄을 쥐어짜는 긴축을 강요함으로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신의 국내 정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부채 조건을 완화해, 그리스한테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은가? 세계은행에서 미국의 이익은 미국인을 직접 지명해서 가장 잘 확보될 수 있는가? 아니면, 미국인이든 아니든 더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는 데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는 것이 좋은가?

이런 질문들을 열정적으로 토론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기 이익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상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의 이익은 사실 우리 이념의 인질이다.

그럼, 이런 이념들은 어디에서 오나? 우리 모두처럼 정책결정자들도 유행의 노예들이다. 무엇이 가능하고 바람직한가라는 관점은 시대정신, 즉 지배적인 이념에 의해 형성된다. 이는 경제학자 및 다른 학문의 지도자들이 좋거나 나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함을 의미한다.

금융위기 이후 거대 은행들을 비난하는 것은 경제학자들 사이에 유행이 됐다. 경제학자들은, 은행에 엄청난 이익을 보장해주는 환경이 마련된 것은 정치인들이 금융이익의 포로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정책결정자와 규제당국으로 하여금 ‘월스트리트(금융가)에 좋은 것은 메인스트리트(제조업)에도 좋은 것’이라고 믿게 만든 것은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이념이었다.

경제학자들은 모든 정치적 악의 근원에 조직화된 특정 이익이 있다는 이론을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자주 합리화했던 나쁜 이념들의 책임에서 쉽게 빠져나갈 순 없다. 영향력은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한겨레 인기기사>

“문재인 목을 베라”…이준석 ‘엽기 만화’ 올려
‘고대녀’ 김지윤 “청년비례 선출과정, 신뢰성 떨어져”
또 회장님 힘내세요? 중앙일보 ‘땅거래 의혹’ 뭉개기
가수 지망생 성추행한 연예기획사 대표 구속
주진모-고준희 결혼설 부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