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공동정부 얘기를 꺼냈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 패배주의라거나 오만하다는 비판들이다.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이라는 이름 석자를 지우고 제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당장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연합정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부족했던 게 ‘가치의 통합’이다.
1997년 디제이피(DJP) 연합은 각료 수나 공천 배분 비율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완벽하게 합의문을 만들었지만, 1년여 만에 결딴났다. 가치가 공유되지 않은 결합이 얼마나 쉽게 어그러지는지 보여준 사례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야권은 여당에 맞서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냈다. 무조건 이긴다는 신비주의적 낙관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졌다. ‘이명박근혜’ 심판론 말고는 국민들의 가슴을 울릴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 경제 민주화, 한반도 평화 등의 깃발을 내걸기는 했다. 하나 선거 전단 속의 말라비틀어진 구호에 불과했다. 내 노후는 좀 편해지는지, 자식 취직 걱정은 덜 수 있는지, 손주들은 맘 놓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한-미 에프티에이, 강정마을, 재벌 개혁 방식 등의 현안은 여전히 어지럽기만 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범야권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고, 실행 프로그램을 짤 책임이 민주당에 지워져 있다. 각 정치세력과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하는 연석회의라면 논의의 틀로서는 맞춤일 듯하다. 통합진보당은 집안 사정이 어수선하고 안철수 교수 쪽은 준비가 덜 돼 있겠지만, 이들이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개문발차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통합은 지지층이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며칠 전 <한겨레> 칼럼에서, 안철수 지지자들은 박근혜 지지자와 절반 이상 같은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욕망을 추구하는 물질주의적 지지자들이라는 거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이들을 ‘새로운 무당파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만큼 기존 정당 지지층과 겹침이 적다는 것이다.
이런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후보들만의 극적인 막판 단일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지층끼리 서로 스며들어 교감하는 화학적 반응 과정이 필요하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유시민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고도 진 것은 지지층이 서로 겉돌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의 구조를 갖는다. 연합정치를 하기에는 토양이 좋지 않다. 게다가 민주당은 127석의 거대 정당이지만, 안철수는 단기필마다. 이런 힘의 불균형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양쪽 사이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신뢰가 필요하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선거 하루 전날 파기됐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거 승리 이후 제대로 권력을 공유할지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던 게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동정부 제안은 지도자들끼리 믿음을 쌓아가는 토대로 작용할 수 있다. 상당 기간 경쟁을 하되,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서 우호적인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2002년 ‘후단협’ 같은 내부의 동요를 막을 수 있는 전술적 효과도 있어 보인다.
민주당의 정치일정을 보면 시간이 빠듯하다. 런던 올림픽, 한나라당 경선 등을 피하려면 9월에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된다. 통합진보당 후보,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는 일러야 11월쯤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때 가서 공동정부를 논의한다면 늦어도 한참 늦다. 그러니 그 몫은 고스란히 민주당 지도부가 짊어져야 한다. 6월9일 태어나는 민주당 지도부의 어깨가 가볍지 않은 이유다.
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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