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엄마의 콤플렉스
풍파가 많았던 내 어린 시절의 로망은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밥상”이었다. 아버지는 부재중이었고 어머니는 밤늦게 들어오시기 일쑤여서 남동생과 단둘이 먹는 밥상은 늘 서러웠다. 요리를 잘하는 편도 아니면서 지금도 난 밥상에 대한 로망을 신줏단지처럼 간직한다. 사실 밥하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동 가운데 가장 즉각적으로 보람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노동이다. 내가 차려준 음식을 아이가 오물오물 맛있게 먹고 남편이 “한 그릇 더 줘” 하면 여자는 신의 은총이라도 받은 양 신명이 난다. 문제는 이 성스러운 노동에 성적 분업이 고착화된다는 데 있다. 먹는 사람과 먹이는 사람. 삼시 세끼 같은 노동을 반복하다 보면 여자에게 신줏단지는 애물단지가 된다.
맞벌이 부부로 살지만 지금껏 밥상 차리기는 99% 나의 몫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편은 음식을 잘 못하니까. 딸아이가 “남자는 음식을 왜 못해?”라고 묻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안 해봐서 못하지.” “근데 왜 안 해봐?” 그러게 말이다. 스스로 가부장적이지 않다고 자부하는 남편은, 언제든 가사노동을 분담할 각오가 돼 있다고 주장하지만 각오는 각오일 뿐, 실전에 투입될 준비는 돼 있지 않다. 모처럼 남편이 밥상을 차린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두어 시간을 뚝딱거리며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끝에 볶음밥 한 그릇씩을 내놓았다. 소시지 잔뜩 넣고 내가 아끼는 참기름을 원 없이 들이붓고 간은 전혀 안 된, 참으로 기괴한 맛이었다. 아이가 두어 숟갈 먹고는 “아빠, 배불러요” 한다.
라면이나 짜장면으로 한 끼를 때우거나 카레라이스, 볶음밥 같은 일품요리를 할 줄 아는 것으로 대단히 가정적인 남편인 양 착각하는 남자들에게 “일주일만 계속 그렇게 먹으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지속가능하지 않은 식단, 의욕은 있으나 실력은 젬병인 음식 솜씨, 한 끼 얻어먹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 번번이 이 덫에 걸려 나처럼 인내심 부족한 주부들은 “어이구 내 팔자야” 한탄하며 다시 앞치마를 두르곤 한다.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던 차에, 마침 동네에서 저녁때 여는 요리강습이 있다고 해서 남편을 설득했다.
퇴직하고 나서도 자기 먹을 밥상 하나 차릴 줄 몰라 마누라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당신의 노년을 상상해 봐라, 애 밥도 못해 먹이면서 양육과 가사를 분담할 수 있느냐, 아줌마들 많은 요리학원 가면 당신은 인기 만점일 거다, 온갖 으름장과 추임새로 등을 떠미니 남편도 용기를 냈다. 양성평등교육은 당신의 제 식구 밥상 차리기에서 출발한다. 밥상은 당신 삶의 질을 반영한다…. 모처럼 의기투합, 진지한 토론도 나눴다. 주말 메뉴는 남편이 배운 요리를 복습하는 것으로 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며칠 뒤, 수강인원이 적어 강습이 폐강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난 오늘도 시시포스의 앞치마에 묶여 있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화보] 함께 숨쉬는 모든 동물과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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