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일본 총리에게 6월은 ‘잔인한 달’로 기록될 것 같다. 전임 하토야마와 간 총리 모두 공교롭게도 같은 6월2일에 사임을 표명했다. 간 총리의 경우 실제 사임은 8월 말까지 끌었지만 6월 이후는 레임덕 상태를 면치 못했다. 이전 자민당 시절에도 6월이 되면 정국이 요동쳤다. 38년간의 자민당 장기집권이 종말을 고한 1993년의 정변도 6월부터 본격화했다. 베테랑 정치기자인 전 <교도통신> 편집국장 고토 겐지씨는 이를 ‘6월의 벽’이라고 표현했다.
무슨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저주가 걸린 것은 아니다. 지극히 간단한 제도적 요인이 배경에 있다. 일본의 정기국회는 1월부터 시작해 회기가 150일간이다. 6월 말이면 일단 회기가 끝난다. 물론 처리 안건이 많거나 한 경우 회기가 연장되거나 가을 이후 임시국회가 소집된다. 하지만 집권당 총리는 정기국회 회기 안에 주요 안건을 처리하는 것이 주된 사명이다. 제대로 정국 운영을 하지 못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총리의 책임 문제가 불거진다. 정권을 교체하거나 총리를 끌어내리려는 당 내외 권력투쟁이 정책논쟁과 맞물리면서 격화되는 구조가 여기에 있다.
노다 총리는 소비세 인상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국회 해산과 총선거를 결단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올해 회기 말은 6월21일이지만 18일부터 멕시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노다 총리가 출석할 예정이어서, 15일이 정치적 데드라인이 되어 있다. 이번 주말부터 일본 정치의 판 자체가 바뀌는 일대 드라마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15일까지 소비세 인상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다 총리는 야당 자민당과 공명당과 막판 절충을 벌이고 있다.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는 오자와 전 대표 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자민당과 손을 잡는 전략이다. 자민당도 이전부터 인상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자민당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무조건 타협을 서두르고 있다. 자민당도 겉으로는 해산 총선거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막상 선거가 두렵기는 민주당과 마찬가지다. 지금 선거를 시행하면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오사카유신회’를 중심으로 한 ‘제3세력’이 제1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초선 의원이 많은 오자와파도 선거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막상 자민당과 타협이 성립되면 극단적인 반대는 하지 못하리라는 계산도 노다 총리에게는 있다.
현재로서는 자민당과 막판 타협으로 소비세 인상 법안을 통과시킨 뒤 자민당과 대연립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거의 같은 시기인 17일 그리스 총선 결과로 유로 위기가 재현될 경우 ‘국난 극복’이라는 대의명분도 가세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대로 진행될 것인지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노다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과 정책에 대한 당 안팎의 지지가 높지 않다. 자민당과의 타협이 지나칠 경우 민주당 중간파까지 불만이 확산될 공산이 크다. 당내의 반발을 통제할 정치적 역량이 노다 총리 주변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개혁적 자세를 포기하고 자민당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노다 정권에 대해 전통적 지지층은 실망하고 민심도 싸늘하다. 아베 총리 이후 5대째 계속되어 온 ‘1년 임기 총리’가 또다시 재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경제 개혁을 화두로 정계가 재편될 때까지 일본 정치의 시행착오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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