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회장
1948년에 등장한 이승만의 1인 독재에 이은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통치하의 대한민국은 40년 동안 숨 막히는 압제에 놓여 있었다.
이 시대를 겪지 않은 젊은이들은 물론 ‘지나간 고생은 남의 것’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나이든 사람들도 그때의 일을 뼈저리게 기억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의 눈 밖에 나서 조작된 죄명으로 옥살이를 경험한 사람과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이때를 좀처럼 잊지 못할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당시의 피해자들이 조작된 죄명으로 부당하게 처벌되었음을 법원이 인정하고 국가에서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며칠 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 두 사람에 대하여도 50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때 구성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 정권의 범죄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이 위원회가 생겨나기 전에 사망한 사람들은 생전에 무죄선고를 받지 못하고 만 것이다. 예를 들면 앞서 말한 민자통의 경북위원장을 지낸 안경근 선생 같은 분도 옥살이를 했으며 억울함을 끝내 풀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안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으로 20대 초기부터 항일전선에 가담했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줄곧 김구 선생의 측근으로 활동한 애국지사였다.
독재 치하의 40년 동안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데 가장 쉽게 활용한 낱말이 ‘국시’다. 박정희 중심의 일부 군인들이 1961년 5월 ‘쿠데타’를 일으키고 당시 명분으로 내건 ‘혁명공약’ 제1조에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과 구호에만 그쳤던 반공의 태세를 재정비 강화…”였다. 6·25 전쟁 이후 언제부터인가 사용하기 시작한 반공국시를 더욱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법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국시란 말은 헌법 이상의 위력을 갖고 반대 여론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었다.
1991년 노태우 정권하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의 유성환 의원이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고 말한 혐의로 기소됨으로써 ‘국시’ 문제가 법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이번 대법관으로 제청받은 당시 서울고법의 고영한 판사는 항소심 판결에서 “국회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정적으로 이뤄진 보도자료 배포는 직무와 관련된 행위로 면책특권 범위에 포함된다”는 판결문을 작성하여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때의 판결도 면책특권의 범위에 관한 것이었으며 “반공이 국시가 아니다”라는 발언 내용 자체에 대하여는 언급을 회피했다. 유 의원의 발언은 ‘면책’의 대상임에 앞서 법에 저촉되지도 않으려니와 정당한 주장이라고 본다. 어쨌든 유 의원이 무죄가 된 뒤 민주화의 발전에 따라 ‘국시’란 말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국시’가 이번에는 ‘국가관’이란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독재통치를 돌이켜 생각하니 나라의 앞날이 몹시 걱정된다. 국가관이란 말은 누구나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공을 국시’로 삼고 반대 세력을 억압했던 독재자의 딸이 이제 ‘국가관’이란 말을 자기와 ‘관’(견해)이 다른 사람을 억누르는 데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리고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종북세력’을 규탄하며 박근혜의 ‘국가관’ 합창에 가세하고 있다.
이번 논의는 통합진보당의 내분에서 촉발된 것이다. 이것은 당내의 문제이므로 외부인사가 개입할 성질이 아니라고 본다. 만약 당내의 선거부정이 국법에 위배된다면 이것은 검찰이 다룰 문제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이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으로 발전하고 ‘국가관’이 등장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새누리당 일부에서는 이제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의 “종북의원 30명을 검증”해야 한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내뱉고 있다.
오는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새누리당은 이 문제를 그때까지 끌고 가서 ‘색깔론’으로 선거를 유리하게 몰고 나갈 속셈이 아닌가? 유권자들이 이런 ‘색깔론’에 끌려다니지 않기를 바란다. 이 나라가 다시 군부통치와 같은 암흑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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