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콘돌리자 라이스와 한국 노인들을 욕보인 김용민의 막말이 지난 총선의 막판 변수였다고 한다. 이 주장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총선을 앞두고 한국의 언론들은 지독히도 김용민을 두들겨 팼다.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상 감당해야 할 업보였다. 총선이 끝난 뒤 막말의 근원에 시선을 돌리고, 책임 있는 이들은 반성해야 한다는 묵직한 제언도 있었지만 별로 힘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의혹이 터졌다. 다시 김용민의 막말로 돌아간다. 그에게 던진 돌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달 2일 경선 의혹을 둘러싼 진보당의 1차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부수가 가장 많다는 신문은 1면 머리기사 둘째 문장에 “(부정은) 상상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저질러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썼다. ‘모든’도 부족해 ‘상상’이란 단어까지 썼다. 이런 유의 기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 구체적인 사례 적시도 없다. 진보당의 선거 부정은 지금도 논란의 울타리에 있다. 감정의 과잉은 말의 힘을 약화시킨다. 욕이 빠졌다고 막말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상상 가능한 모든 부정이 저질러졌다’면서도, 신문의 관심은 곧장 딴 데로 향한다. 종북몰이. 임수경이 튀어나오고, 총리를 지낸 이해찬에게까지 종북의 혐의를 씌운다. 1면에 두툼한 활자로 “국회 들어오는 ‘대한민국 부정세력’ 못 막는 대한민국”이라고 겁박한다. 왜 대한민국 부정세력에 홑따옴표는 씌웠을까. 자신이 없었을까. 기사는 진보당 옛 당권파 의원 6명의 과거 이력만 줄기차게 되뇌었다. 현재 그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있다는 근거는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엉뚱한 곳에서 피해자가 나왔다. ‘종북 주사파 국회 입성’이라며 신문이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려대는데,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가 국가관 검증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시대착오적 사상검증 주장으로 ‘유신의 딸답다’는 덤터기를 쓴 박근혜 의원의 머릿속은 복잡했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을 언론에 대한 적대감의 총량은 한 뼘 더 늘었을 것이고.
지난 16일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보면 “민노총, 통일 교과서라고 낸 게… /“북한의 3대 세습은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훌륭해서 세운 것””이라고 되어 있다. 기사에선 제목의 “ ” 부분이 북한 주장을 인용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제목만 봐선 민노총의 주장처럼 읽힌다. 김용민의 막말엔 솔직함이라도 있다. 하지만 노련한 기술자의 솜씨가 돋보이는 언론의 막말에선 어떤 선의도 찾기 힘들다.
지난 두달 일부 언론이 행한 마구잡이 감정의 배출은 오히려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설 공간을 넓혀주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옛 당권파의 폭력사태 이후 ‘진보 시즌 2’ 함성이 울려퍼지며 그야말로 게임 끝으로 보였던 진보당 당권 구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면 그 주장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발언은 ‘당권 경쟁에서 자파 세 확대를 위한 노림수가 있다’는 보수신문의 분석에선 쓴웃음이 나온다. 사실을 가벼이 여긴 ‘말’의 위신이 어느 정도 추락할 수 있는지 스스로 드러내 보이는 꼴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대표가 지난 4일 초선 의원들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보라”고 충고했다는 내용이 다음날 여러 신문에 실렸다. 신문 보라는 야당 정치인의 발언을 지면에 옮기는 게 독자 늘리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막말로 신문의 위기를 넘겠다는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한번, 김용민에게 던진 돌의 의미를 새길 때다. 공동체뿐 아니라 신문을 위해서.
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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