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가 돌아본 6개월
“커버 내리죠?” “에이, 그냥 가죠?”
토요판 제작 마감일인 금요일. 각 부문 에디터와 부장이 참여하는 편집국장 주재 편집위원회 시간엔 가끔 논쟁이 오간다. 예정에 없던 중대 사건이 갑자기 허를 찌르며 치고 들어올 때다. 당일 발생한 긴급뉴스가, 토요판 1면 머리로 예약된 커버스토리 기획과 자리 경쟁을 한다. 토요판의 차별성을 밀고 가야 하나, 뉴스전달이라는 신문의 오래된 본령을 존중해야 하나. ‘일본 쓰나미’나 ‘김정일 사망’ 같은 초대형 뉴스가 아닌 바엔 명쾌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첫 호를 낸 지 6개월. <한겨레> 토요판은 일간신문 시장에서 도전적인 실험을 했다. 1면은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 머리를 기획기사로 장식하고, 신문을 절반으로 접으면 한 권의 잡지 표지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했다. 이 편집원칙은 딱 한번 흔들렸다. ‘북한의 로켓 발사’ 뉴스에 밀려 커버 기획이 지면 아래로 내려왔던 4월14일치다. 기획기사가 본래 자리를 고수할 땐, 스트레이트 기사의 무게감을 높이는 편집상 절충이 이뤄졌다.
초기 지면설계에 관여한 담당 에디터로서 그동안 6개월을 돌아본다. ‘한국 신문의 흥미로운 포맷이 탄생했다’는 호의적 평가에 고무되기도 했지만, 낯설고 적응이 안 된다는 독자도 있었다. 3월3일치에 보도한 ‘제돌이의 운명’은 특히 안팎으로 말이 많았다. 한가해 보이는 ‘동물복지 이슈’를 1면으로도 모자라 3·4·5면에 펼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이었다. 당일치 마감날은 청와대 행정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에 관한 첫 보도를 할 때였다. 돌고래 이야기가 민간인 불법사찰보다 우선해도 되는가? 이와 관련해 한 독자는 “토요판이 연성기사에 치우쳐 의제설정에서 밀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을 보내오기도 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길~게 내쉬어 본다. 토요판 독자를 위한 숨쉬기 운동이다. 1면을 포함해 토요판 전체의 콘셉트는 ‘긴 호흡’이다. 토요일만큼은 속보나 현안보다 심층 콘텐츠 위주로 다르게 가자는 뜻이다. 이는 이야기구조를 갖춘 ‘서사’를 요구한다. 1면에서 시작해 3~4면으로 이어지는 커버스토리 기사는 주로 인물의 개별적 서사를 긴 호흡과 와이드한 구성으로 보여준다. 언뜻 ‘시의성’에 역행하는 듯 보인다.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2월4일치)을 인터뷰한 커버스토리는 당시로선 존재하지 않던 시의성을 만들어낸 경우다.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제돌이 기사 역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돌이 방사 결정에 영향을 끼친 뒤 다른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다. 뜬금없는 소재가 시의성을 주도하고 의제설정에 공헌한 셈이다.
긴 숨에 맞게, 토요판 기획물은 대부분 ‘장편’이다. ‘르포’와 ‘뉴스분석 왜?’ 등은 30장(200자 원고지 기준)이 기본이다. ‘김두식의 고백’ 같은 인터뷰 꼭지나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등 연재 역사물은 그 이상일 때가 많다. 독자들은 ‘다음주에 계속’으로 끝나는 글을 자주 보았으리라. 내용도 가볍지만은 않다. 뜻밖에도 긴 기사에 포만감을 드러내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매체의 ‘읽는 맛’이 무엇인지 음미해 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금요일 발생한 뉴스를 통합한 ‘오늘’면은 정치·경제·사회·문화로 구분하는 전통적 뉴스경계를 허문 본보기가 됐다. ‘주말신문=소프트 뉴스’의 공식을 깬 점도 호응을 받았다. 매주 ‘생명’면을 통해 보도한 동물권 이슈는 진보의 새 화두가 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가족’면은 독자들의 참여가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은 최적화된 토요판을 향해 가는 길목에 있다. 시행착오를 교훈으로 삼는다.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질타도 있다. “더 말랑말랑해졌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있다. 고집할 원칙은 고집하되, 비판에도 귀기울이려 한다. 단점은 보완, 장점은 지속성이 열쇠다. 현재의 신문 문법을 쉼없이 파괴해 나간다는 전제 아래. 더 스펙터클한 토요판 지면의 미래를 꿈꾸며.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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