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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브로커와 악수하던 손에 정의를 맡기자? / 박용현

등록 2012-07-22 19:18

박용현 사회부장
박용현 사회부장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핵심 질문은 ‘자신이 관할하는 사건과 관련해 저축은행 브로커 친구의 청탁을 받았느냐, 혹은 돈을 받았느냐, 혹은 수사에 개입했느냐, 혹은 수사기밀을 알려줬느냐’가 아니다. 이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대법관은커녕 일개 판검사의 자격도 없다. 아니, 그 전에 감옥부터 가야 할 일이다. 이런 잘못된 질문을 전제로 한 작금의 논란은 우리 사회가 대법관을 무슨 친목회 회장 자리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법관의 위상이 참 많이도 추락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의혹이 아니라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구성될 수 있다. ‘자신이 관할하는 사건과 관련해 저축은행 브로커 노릇을 하다가 실형까지 선고받은 사람을 절친한 친구로 두고 있는 고위 검사가 대법관으로서 자격이 있느냐.’ 그 브로커와 자주 산행도 즐기고,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도 나란히 구입했다는 사실도 고려하자.

만약 판검사들이 죄다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면, 굳이 김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을 반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법관은 전체 법관 2700여명 중 단 14명을 골라 이 나라 사법부 최고의 권한을 부여하는 자리다.(김 후보자는 이른바 ‘검찰 몫’이라고 하니, 전체 검사 1800여명 중 한 사람을 고르는 일이기도 하다.) 법원조직법상 대법관 자격 요건이 되는 경력 15년 이상, 40살 이상 법관·검사들이 모두 김 후보자보다 나을 것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김 후보자를 임명해야 할 이유는 절대 없다.

새누리당은 김 후보자의 적격성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대법원에 모욕을 주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대법관은 아무나 앉혀도 되는 자리라고 보는 셈이니 말이다. ‘원님 재판’이나 하라는 뜻인가. 대법원은 헌법이 규정한 최고법원이다. 그러나 법이 권한을 부여했다고 해서 그에 걸맞은 권위까지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법률가로서 훌륭한 업적을 쌓고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대법관이 되어,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속에서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성채 같은 판결을 내놓아야만 권위가 세워지는 것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식으로 권한만 앞세우는 재판이라면, 저잣거리 힘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런 권위를 갖추는 일에 대법원은 일단 실패했다. 김병화 후보자를 비롯해 종교 편향과 재벌 편향으로 얼룩진 후보자들을 임명 제청한 데 대해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금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 후보자가 워낙 도드라져서 그렇지, 나머지 후보자들도 ‘우리 법원에 과연 이 정도 인물밖에 없느냐’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법원이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바로잡는 일은 국회로 넘어와 있다. 야당이 김 후보자의 임명에 반대하고 이 때문에 대법관 공백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고 우려들을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대법관 자리는 공백을 피하려고 아무나 앉혀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선출되지 않은 막강한 권력인 만큼 국민을 대신해 국회에서 철저히 검증하고 부적격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내는 게 국회의 의무다.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를 보면, 1789년부터 2007년까지 대통령이 상원에 임명 동의를 요청한 158명의 연방대법원장 또는 대법관 후보자 가운데 36명이 낙마했다. 5명에 한명꼴로 걸러낸 셈이다. 우리 헌정사에 그런 사례가 단 한번(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영미권에서 최고법원 판사는 ‘저스티스’로 불린다. ‘정의’가 그 손에 달려 있음이다. 다시 한번 묻자. 브로커와 악수하던 손에 우리의 정의를 맡겨야 하나.

박용현 사회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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