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야, 하나도 안 변했네. 학교 다닐 때도 비합법이더니, 여전히 비합법이네.”
“요란 떨 필요 뭐 있어. 북한을 민주화하려면 조용히 움직이는 게 좋아.”
1일 서울대 조국 교수와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만났다. 둘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다. 학생운동도 함께 했다. 그러나 많이 달랐다. 김영환이 언더서클에서 음지를 지향했다면, 조국은 법대 학술지 편집장으로서 양지에서 활동했다. 김씨가 ‘강철서신’으로 주체사상을 전파한 반면, 조 교수는 <주체사상 비판>에 글을 실었다. 둘이 주고받는 대화가 제법 까칠한 이유다.
그러고 보니, 또래인 나도 김영환을 꽤나 미워했다. 우리 세대에 끼친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이다. 한번은 친북으로 마음을 뒤흔들어 놓더니, 또 한번은 반북으로 정신을 헷갈리게 했다. 많이들 상처를 받았고, 세력은 갈가리 찢겼다.
그래도 요즘은 원망이 많이 누그러들었다. 뉴라이트 쪽 사람들이 다들 새누리당을 기웃거릴 때,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역겨운 모습을 보면서는 “아이고, 김영환 욕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역들이 김영환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중국에서 ‘살이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전기고문을 받았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북한 인민들을 구출해내겠다는 그의 일관된 신념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안동 출신이라 그런지 조선의 성리학자 같은 풍모를 지니고 있단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밥은 백번씩 씹어 삼키라’고 한 말을 20년 넘게 실천하다 위무력증에 걸릴 정도로 고지식한 위인이다. 그래서 강인해 보이는 그의 턱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라, 반복된 저작운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북한민주화운동이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처지를 바꿔서 1960~70년대 북한이 남조선 해방을 명분으로 간첩을 내려보내고 지하조직을 만든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김영환의 인간중심 철학과도 맞지 않는다. 북한의 민주화는 일차적으로 북한 인민의 몫인 것이다. 어떻게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건,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과 이명박의 ‘비바람정책’이 낳은 결과로 이미 판가름난 거다.
또 뒤늦게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됐다면 김일성 가문만 비난할 일이지, 왜 이미 무덤에 들어간 박정희·이승만에 대한 평가까지 뒤집는가 하는 점이다. 이건 아마도 자신의 머릿속에 하나에서 열까지 전일적인 세계관과 사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일관된 잣대로 해석해내야만 직성이 풀리고, 또 그렇게 형성된 신념체계를 현실세계에서 작동시켜야만 한다는 의무감 말이다. 하지만 과도한 이성주의와 넘치는 자기확신이 빚은 참사는 세계사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오히려 세상의 운동법칙은 복잡하고, 인간의 지성은 불완전하다는 낮은 자세가 세상사에 더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조국도 이날 비슷한 관점에서 김영환을 추궁했으나, 시원한 답변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날 대화는 내내 유쾌했다. 법대 동기인 원희룡·나경원·김난도 얘기가 나왔고, 자신들이 누리는 유명세도 화제에 올랐다. 조국이 “난 주로 30~40대가 알아봐 주고, 적극적으로 아는 체하는 건 여성”이라고 하자, 김영환은 “야, 나하고는 반대구나, 난 전부 50~60대야. 다 남자들이고…. 부럽네”라고 받았다. 둘은 킬킬거렸고, 그 모습은 30년 전 풍경을 닮아가고 있었다.
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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