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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불체포특권은 억울하다 / 송호창

등록 2012-08-13 19:29

불체포특권 폐지하면
국회 독립 무엇으로 보장하나
의원들 둔감한 준법의식 버려야
현행법상 대통령을 체포할 수 있을까? 내곡동 사저 사건으로 검찰이 이명박 대통령을 체포하여 수사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인가? 헌법은 내란, 외환죄 이외에는 대통령 재직 중 형사소추(기소, 재판)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을 뿐 체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일반 형사법 위반을 이유로 대통령을 체포, 수사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가뭄으로 극심한 고통에 빠진 농민들을 위한 긴급지원을 하려는데 대통령이 체포되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사고를 막자는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그 직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헌법기관의 특권이자 헌법적 배려이다. 법관 역시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는 한 파면할 수 없도록 특별히 신분보장을 하고 있다. 법관의 안정적인 직무수행을 보장하지 않으면 국민의 재산과 신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헌법기관이 갖는 신분상의 특권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검찰·경찰 등이 공권력을 이용해 함부로 대통령과 법관을 체포하고 가두게 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때문에 헌법기관은 자기가 싫다고 특권을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포기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불체포특권은 과거 영국 국왕의 전횡으로부터 의회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상징으로 시작됐다. 불체포특권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기능 보호와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해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가 가지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처럼 불체포특권이 없는 곳도 있지만, 이런 곳은 의회에 대한 존중과 불간섭이 관습법으로 정착되어 의회를 향한 공권력 남용이 거의 없다는 자신감이 확립된 경우이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체포뿐 아니라 기소를 하기 위해서도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보호범위를 더욱 넓게 한 경우도 많다. 각국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를 뿐 대부분의 국가는 국민의 대표인 의회를 보호하기 위해 불체포특권을 갖고 있으며 국회의원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 같다.

행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군, 경찰, 검찰 등의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국회를 보호하는 방법은 불체포특권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면책특권은 법원의 판결에 의한 형사책임을 면하는 것일 뿐 공권력 행사인 체포와는 관계가 없다. 불체포특권이 없다면, 예컨대 대검 중수부 폐지법안을 추진중인 의원을 검찰이 체포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정부정책을 완강히 비판하는 야당 의원을 인신구속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게 된다. 그 결과 피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대한 국민들의 힐난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제도라지만 정작 국민들에게는 국회의원 개인의 방패막이쯤으로 더 많이 비친 탓이다. 국회의원들은 사법부인 법관, 행정부인 대통령과 달리 그 특권을 남용하는 선례가 많았다. 2004년 7명의 여야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사건은 국민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의 불체포특권에 대한 비난은 그것과 전혀 양상이 다르다.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두고 새누리당이 집중 비난을 받은 것은 개원 전부터 특권을 버리겠다며 온갖 캠페인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특권 뒤에 숨는 이중적인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이까지 내다 버려선 안 된다. 버릴 건 불체포특권이 아니라 국회의원의 둔감한 준법의식이고, 국민을 위한 특권을 마치 개인의 권리인 것처럼 포기하겠다고 선전하고 야당을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비겁한 정치, 사악한 정치인이다. 불체포특권에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다. 헌법정신을 이해하는 법률가들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

송호창 제19대 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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