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아무리 선의로 이해하려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독도 방문으로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의 대일정책 변화가 그렇다. 우리 대통령이 우리 영토를 방문하는 것을 탓할 사람은 없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마당에는 더욱 그렇다. 일왕에게 식민지 침탈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호통을 치는 것도 피해국가 대통령으로서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사리를 따져보면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뉴라이트 정권의 수장인 이 대통령이 갑자기 반일투사처럼 행동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현 정권을 탄생시킨 뉴라이트가 누군가? 그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일제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고 야만적 민족탄압의 역사를 인정하기를 꺼리는 집단이다.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으며 독립기념관을 방문해서조차 일제 친일파에 대해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일 태도는 뉴라이트와 맥을 같이해왔다. 그는 “성숙한 한-일 관계를 위해 사과하라, 반성하라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며 “과거 마음 상한 일을 갖고 미래를 살 수 없다”고 했다. 중학 교재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명기하겠다는 후쿠다 일본 총리에게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1년 8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날 때까지 국민은 그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과거사는 깨끗이 잊은 듯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했다고 나서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 엊그제다. 그런 그가 ‘민족의 섬’ 독도를 그토록 사랑한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이 대통령의 언행이 국익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독도는 원래부터 우리의 영토였으며 1954년 독도의용대원들이 바위에 새긴 ‘韓國領’(한국령)이라는 글자에 이곳을 지킨 숭고한 선열의 넋과 민족 의지가 담겨 있는 땅이다. 대통령이 누구건 그의 이름을 새긴 표지석이 더 필요할 만큼 어정쩡한 곳도 아니며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소중한 국토다. 이런 까닭에 독도가 국제적으로 시끄러워져 득 볼 게 없다. 반면에 우리와 처지가 반대인 일본은 독도를 분쟁수역화하여 시비를 공론화하는 것이 노림수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이 독도 방문에 신중을 기했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이 독도에 대해 극단적 도발행위를 했을 때 써야 하는 카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뜬금없는 독도 방문으로 그 카드가 날아갔다. 일본은 이를 기회 삼아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일본에 그 명분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역대 정부 독도정책의 중요 방향이었는데, 그것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일왕 방한 관련 발언에서도 전략 부재가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 국민은 1990년 일왕이 말한 ‘통석의 염’을 진정한 사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로 식민지 침탈에 대해 사과했다. 그것도 부족하지만 역대 한국 정부는 일본에 추가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대신에 더 중요하게 일본이 사과한 대로 행동하라고 요구해왔다.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다고 해놓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식민지 침탈 과정에서 병탄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과했으면 그에 맞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사과 문제를 강하게 제기함으로써 역대 정부가 해온 합리적인 노력이 무색해졌다. 아마 일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은 사죄를 해도 끝없이 사죄만 요구하는 비합리적인 나라’라는 식으로 몰고 갈 것이다.
과연 이 대통령은 스스로 불러온 이 상황을 헤쳐 갈 로드맵을 가지고 있을까? 정권의 능력이나 사후 수습 과정을 보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남북 문제와 한-중 관계에서 그랬듯이 한-일 문제도 전략부재의 즉흥과 정략만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정권 아래서 국익망실의 시대를 감내해야 하나? 5년도 길었다. 더는 안 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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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종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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