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정치부장
[편집국에서] 민주당의 밥그릇 걷어차기 / 임석규
2002년 3월9일 민주당 대선후보 제주 경선은 우리 정치에 도입된 첫 국민경선이었다. 선거인단 792명 가운데 당원·대의원이 414명, 신청자 중에서 추첨으로 뽑힌 일반 국민경선단이 378명이었다.
그때 1주일 동안 제주에 머물며 국민경선단을 취재했다. 접촉되는 이들을 닥치는 대로 인터뷰했다. 중국집 주방장 겸 주인 민경선씨, ‘송미’라는 이발소를 하던 송은섭씨, 당근·감자 농사를 짓는다던 조동윤씨, 담배인삼공사 영업직 김중언씨, 미용실 주인 부선옥씨, 1t 화물트럭을 몰고 식당에 물수건 돌리는 일을 하던 박강수씨 등을 만났다. 정당 근처엔 가본 적도 없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다는 게 그 무렵엔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후보도, 국민경선단도 ‘첫 경험의 짜릿함’에 들떠 있었다. 국민경선 실험이 없었다면 당시 정당 내부의 지배질서를 뒤흔들지 못했을 테고, 노무현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년은 국민이 현 야권에 활력을 불어넣어온 과정이었다.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국민이 나서서 구해냈다. 2004년의 촛불은 탄핵을 무력화시키며 17대 총선에서 신생 열린우리당을 순식간에 과반으로 만들었고, 2008년의 촛불은 무력한 야권을 대신해 이명박 정부에 맞섰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시민후보 박원순’을 당선시켰다. 국민의 활력을 수혈받지 못했을 때 야권은 역동성을 잃고 지지부진, 지리멸렬했다. 2007년 대선이 그랬다.
2012년 8월25일 제주지역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단 수는 3만6028명, 10년 전의 100배다. 100% 완전국민경선이어서, 일단 제도상으로는 정당 바깥 국민이 정당 내부 가장 중요한 권력변동인 대선후보 선출을 완벽하게 좌우할 수 있는 구조다. 존재감을 잃어버린 민주당이 국민의 힘을 수혈받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25·26일 민주당의 경선 파행은 국민의 활력을 받을 수 있는 혈로를 스스로 틀어막는 꼴이다. ‘제 밥그릇 걷어차기’나 마찬가지다. 할 말이 없지 않겠지만 국민 눈엔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다. 정치 아마추어에 대한 프로 정치인들의 비아냥은 근거가 허물어졌다. “그래, 당신들 정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정치, 참 보기 좋군!” 민주당 경선 파행을 두고 이런 조롱이 나온다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상황이다.
요즘 야권의 잘나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정당 출신이다. 안철수는 물론, 문재인도 정통적인 정당정치인은 아니다. 국민이 먼저 알아봤고 지지율이 오르면서 정당에 스카우트됐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순전히 국민이 만들어낸 시장이다. 국민은 기존 정치권 출신이 아닌, 국민이 직접 스카우트한 인물들을 통해 정치를, 정당을 바꾸려 하고 있다. 민주당 경선 파행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박근혜는 국회에서 5선을 쌓은 정통 정당정치 출신이다. ‘박근혜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을 완벽하게 장악한 후보다. 이런 점에서 올해 대선은 ‘정당정치 출신과 국민정치 출신의 대결’로도 볼 수 있다. 대선 향배를 가늠해볼 수 있는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박근혜는 최근 ‘국민’이란 낱말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8월20일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선 43차례, 7월10일 출마선언 연설에선 80차례나 ‘국민’이란 단어를 썼다. ‘국민행복위원회’를 띄우고 ‘5천만 국민행복 플랜’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박근혜의 ‘국민’ 키워드 반복 사용이 ‘정당 대 국민’의 대결구도를 갈파하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전략이라고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임석규 정치부장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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