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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패전 60돌’ 맞은 일본의 8월

등록 2005-08-04 18:27수정 2005-08-04 18:28

박중언 도쿄특파원
박중언 도쿄특파원
아침햇발
태평양전쟁 패전 60돌을 맞은 8월 일본 열도는 짙은 먹구름에 에워싸인 듯이 음울해 보인다. 일본의 외교는 사면초가 상태이며, 정국은 우정민영화 법안을 둘러싼 집권 자민당의 내분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어둠속을 헤매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대외관계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중국과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부터 영토, 동중국해 자원 개발 등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미-일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대만 문제까지 건드려 양쪽의 대립이 군사적 긴장으로 확대될 우려마저 커졌다. 독도와 왜곡 교과서 논란으로 한-일 관계 또한 냉각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친근감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지난해 한류 열풍이나 두 나라 정상의 셔틀 외교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북-일 관계는 더욱 엉망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두 번이나 방북을 단행하며 수교 의지를 강조했으나 강경파에 발목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일본은 북핵 6자 회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북한과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할 납치 문제를 다자 테이블에 끊임없이 들이대니 다른 나라의 눈총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보내온 피해자 유골을 가짜라고 성급하게 단정함으로써 어렵사리 마련한 대화 자리를 스스로 걷어차고 말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두 차례나 만난 고이즈미 총리가 북-미 사이의 윤활유 구실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일본의 입지는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아시아 나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강행하는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기도 또한 좌초될 처지에 놓였다.

이는 일본의 자업자득이다. 역사 인식의 후퇴, 희박한 과거청산 의지, 극우세력의 준동 등이 빚어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깊은 패전 60돌은 일본이 스스로 되돌아보고 깊게 팬 주변국과의 골을 조금이라도 메우는 계기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정부와 집권 자민당 지도부한테서 그런 열의와 능력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정권 붕괴로 이어질지 모르는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운좋게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통과돼 고이즈미 정권이 유지되더라도 상실한 지도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고이즈미 이후’ 자민당의 모습도 갑갑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더 암담한 것은 극우성향을 전방위로 떨치고 있는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가 여론조사에서 총리 적임자로 압도적 우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안이 부결되면 중의원 해산과 총선으로 자민당 장기집권이 끝날 가능성이 있다. 정권교체는 꽉 막힌 일본 정치에 새바람을 몰고올 여지를 준다. 그렇지만 제1 야당 민주당도 자민당의 우익 성향을 닮아가고 있어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정치권의 뒷걸음질치는 역사인식은 10년 전보다 내용이 후퇴한 패전 60돌 국회 결의에서도 잘 드러난다.

8·15가 다가오면서 극우세력의 극성은 도를 더해간다. 이들은 주변국의 우려에 아랑곳않고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에서 20만명이 참여하는 추도집회를 열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고이즈미 총리의 8·15 야스쿠니 참배도 촉구하고 있다. 극우의 ‘메가폰’ <산케이신문>은 전범을 심판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아시아 침략을 진솔하게 사죄한 1995년 당시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를 소수의 공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일본 역사 인식의 ‘마지노선’마저 허물려고 하는 것이다.


갑갑한 8월, 그나마 ‘깨어 있는’ 일본 지식인과 시민들의 열정이 청량제로 다가온다. 이들의 열렬한 반대운동으로 왜곡 역사 교과서의 채택이 상당히 저지됐고, 지난달 말 노벨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등이 주도한 1만명 규모 개헌반대 집회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 등이 그것이다.

박중언/도쿄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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