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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등록 2012-10-05 19:23수정 2012-10-05 21:39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이십세기 기수’, <사랑과 미에 대하여>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혜수 옮김, 도서출판 b, 2012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어때요. 우린 살아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다자이 오사무) “감독님 영화에는 죽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죽음에 대한 제 입장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절대 반대입니다.”(<씨네21> 우디 앨런 인터뷰)

두 사람의 예술가. 다자이는 “몰락과 멸망이 체질로” 정신병원을 오가며 동반 자살을 포함 다섯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아홉번째 생일날 주검으로 물에 떠올랐다. 77살의 우디 앨런. 전문가들은 그가 “105살까지 걸작을 남길 것”으로 전망한다. 그의 향년은 진행형이다.

‘이쪽 디엔에이(DNA)’ 사람들에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는 유명한 말이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기차와 정면충돌하며 자살하는 남자의 유서는 한마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원고지에 만년필로 쓴 유려하면서도 단정한 히라가나가 기억에 남는다. 그림 같았다.

최근 다자이 오사무 전집이 번역 출간되면서 이 문장의 출전인 단편 ‘이십세기 기수’(二十世紀旗手)를 드디어 읽게 되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는 이 작품의 첫번째 문장이다. 이 문구는 허무와 퇴폐가 구호였던 무뢰파(無賴派) 문학, 말 그대로 무뢰한들의 서원(誓願)이었으며 전후 일본 사회를 대변한 정파(政派, ‘情波’)였다. 작품은 당연히 ‘기수’의 어감과 거리가 멀다. 마약성 진통제인 파비날 중독 당시 쓴 것으로, 작자 자신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 고리 대금업 출신의 부잣집 아들, 귀족원 의원과 현지사를 지낸 집안, 천재, 작가, 좌파 활동, 도쿄대 입학, 열애, 약물 중독…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한다는 작가, 일본의 도스토옙스키. 극적인 생애는 ‘옛날 지식인’의 전형처럼 보인다.

한수산의 분석이 딱 옳다. “그를 읽는다는 것은 젊은 날의 상처다. 그러므로 그 상처가 나을 때 독자는 그를 떠난다. 다자이는 홀로 거기 있다. 어린이가 자라면 또 다른 젊은이가 다자이를 만나고…. 다만, 나는 안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에서 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나아가지 못한 작가라는 것을.”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는 자학이 아니다. 인간은 ‘낳아지는’ 것이지, 누구도 ‘태어나지’ 않는다. 문법과 무관하게 탄생은 능동태일 수 없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생산하는 사람 있나? 우리는 동의 없이 태어났다. 살기 싫은 사람에게 이만큼 열받는 일도 없다. 의지로 가능한 것은 자살뿐이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기겁했다. ‘자기가 태어났고’ 그래서 ‘죄송하다’니.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에 죄송하다는 메시아적 죄책감. 이 어마어마한 자의식과 이를 따르지 못하는 자신. 근대 주체성의 위태로운 산정(山頂), 지식인의 자의식은 그를 서서히, 낭만적으로 살해했다.

의제는 “태어나서 죄송하다”가 아니라 “사람같이 살지 않으면 어때요”다. 자살 욕구가 증상인 우울증 환자를 제외하면, 자살은 ‘사람답게’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는 유서에 “소설 쓰기가 싫어져 죽는다”고 했다. 실연, 빚, 외로움, 망국, 사회주의 붕괴, 축구팀 패배, 입시…,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인생관과 처지에 따라 죽을 이유가 된다. 재능이 없다고 자살하는 것은 ‘한가한’ 죽음이고, 생활고로 죽는 것은 ‘절실’한가? 심신의 강약이 자살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살려면, 기대를 낮춰야 한다. “글을 쓸 수 없어 죽는다”는 건 ‘생명 경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다. 삶의 매순간이 의미와 호기심, 열정의 연속이라고 믿는다면 ‘재능 없는 천재’의 좌절, 자기모순, 동반 자살 실패의 죄의식, 경멸하는 인간들과의 경쟁, 심지어 패배…, 이건 삶이 아니다. 그의 영원한 인기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 타입의 인간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읽는 이를 무장 해제시키는 그의 치열한 절망에 결국, 어깨부터 몸부림이 온다. 나도, “못난이처럼 울고 있다.”(유서 중) 청춘도 아닌데.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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