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1963년부터 34년 동안 <뉴욕 타임스>의 일인자로 군림한 아서 옥스 설즈버거가 지난달 30일 사망했다. 추석 연휴에 나온 소식이라 국내 언론에서는 간략히 취급됐다.
신문의 대명사쯤으로 취급되는 매체의 대표로 30년 이상 재임한 이의 죽음이라니 신문쟁이의 한 사람으로서 관심이 안 갈 수 없다. 그는 재임중 스포츠·과학·주말 등 섹션 체제를 본격 도입했고, 외부 필자의 칼럼만을 싣는 여론면(Op-ed)도 새로 만들었다. 이런 시도는 다른 신문들로도 옮아갔다.
호기심을 돋운 대목은 또 있었다. 신문은 사주의 죽음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 답이 궁금했다. 신문이 늘 앞세우는 객관과 균형이 사주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인가?
신문은 사주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보스의 퇴임 이듬해인 98년부터 부음 기사를 준비했다는 클라이드 헤이버맨 기자의 기사는 인쇄해보니 19장(A4 용지) 분량이었다. 1면 머리에서 뒷면으로 이어졌다. 사설과 고정칼럼, 독자편지란에도 사주에 대한 칭송 글은 넘쳤다. 이를 지면 사유화로 단죄하려면 비교 검토가 필요하다. 이 나라의 다른 주요 신문들도 대부분 사설 또는 장문의 기사로 경쟁지 사주의 삶을 칭송했다. 양의 차이가 있을 뿐 접근 방식이나 기사 구성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음 기사로 한 신문의 균형감각을 살피려 했던 생각을 접었다. 궁금증은 사주의 죽음이 왜 이처럼 크게 취급되어야 하는가로 옮아갔다.
기사들의 핵심어는 미국의 기밀 외교문서인 ‘펜타곤 페이퍼’였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1971년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흔적이 생생히 담긴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보도를 막기 위해 <뉴욕 타임스>에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법률자문사는 신문사가 문을 닫고 설즈버거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며 보도 불가 의견을 냈다. 하지만 발행인은 다른 길을 갔다. 두려움을 이겨낸 그의 원칙은 이 나라 언론과 민주주의에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연방대법원이 신문의 손을 들어주면서 언론과 정부의 관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판결 이후 이 나라 언론에서 정부의 치부를 들춰내는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 공격적인 탐사보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설즈버거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에게서 특별한 부탁을 받는다. 사이공 정부의 부패와 같은, 미국 정부에 불편한 기사를 쓰고 있던 자사 남베트남 특파원을 교체해달라는 청이다. 그는 대통령의 민원에, 당시 휴가중이던 기자에게 당장 현업에 복귀해 기사를 쓰라는 지시로 대응했다.
미국 언론사가 앨릭스 존스는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의 전쟁 보도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전장의 다른 매체들도 차츰 이 신문을 따라 정부의 보도통제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수상자들은 우연히 한 식당에서 만난 설즈버거에게 감사의 표시로 샴페인 한 병을 선물했다.
두번째 질문에 지극히 주관적인 답을 냈다. 기자들은 설즈버거를 치켜세우는 기사에서 권력과 언론, 그리고 사주와 기자의 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확신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는 결론이 그것이다.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이 오랜 기간 시청자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 권력이 점지한 김재철 사장에게 피디수첩은 아마 ‘손볼 대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기자 출신 사장에 의해 한국의 대표적인 감시견 프로그램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후세 사가들은 어떻게 기록할까. 이미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김 사장에게 다시 언론사 경영자의 명예를 들먹이는 것은 덧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더는 후배들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시기를.
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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