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이타적 투표 / 박용현

등록 2012-10-21 19:17

박용현 사회부장
박용현 사회부장
1. 선거에서 던지는 한 표의 가치는 모두 동등하다는 게 상식이지만, 달리 설명하는 이론도 있다. 한 표의 가치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곱하기 ‘선거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을 경우 얻는 혜택의 크기’라는 것이다. 이 중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1/전체 유권자 수’로, 모두가 동일하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을 경우 얻는 혜택의 크기’는 변동이 가능하다.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따져 투표할 경우 ‘1인분의 혜택’을 얻는 것이라면, 다른 어떤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투표할 경우 투표자가 얻는 ‘혜택의 크기’는 삶이 개선되는 타인들의 수만큼 불어난다. 결국 곱셈 결과는 커진다.

이 이론이 마냥 관념의 조작만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대학 제임스 파울러(Fowler) 교수와 뉴욕주립대 리처드 잰코스키(Jankowski) 교수의 연구 결과(2006~2007년)를 보면, 다른 사람들의 더 나은 삶에 대한 관심 정도와 투표 참여율 사이에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투표 참여율은 유권자의 나이·수입·교육수준 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런 요소들보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 즉 이타적 동기가 투표 참여를 결정하는 압도적 변수라고 한다. 앞서 소개한 계산법에 따라 표의 가치가 커질수록 실제 투표장에 나갈 가능성도 커지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투표에 열심히 참여하는 유권자라면 상당수가 스스로 인식하든 않든 이런 ‘이타적 투표’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 대선에서는 좀더 나아가, 자신의 표 가치를 한번 꼼꼼히 계산해보면 어떨까. 특히 ‘나 하나 투표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또는 ‘누가 당선되든 나하고는 상관없잖아’라는 생각에 투표를 포기했던 유권자라면, 한 표의 가치가 ‘1인분’을 넘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상상을 해보면 좋겠다.

2. 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배제된 이들이 있다. 바로 어린이·청소년들이다. 장애인들이 투표소 접근에 어려움을 겪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이지만, 이들에게도 형식상의 투표권은 주어져 있다. 그러나 어린이·청소년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펴는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래서 어린이·청소년은 주류(어른)가 만들어 놓은 제도와 환경을 자신에 맞게 고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그 틀에 자신을 맞춰 나가거나, 그것이 힘들면 틀을 깨고 나오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다. 주관식은커녕 그 흔한 사지선다형보다 선택 폭이 좁은 ○×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를 선택한 아이들이 바로 요즘 신문지상을 처참하게 물들이는 성적 비관 자살, 학교폭력, 성매매 같은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어른들은 저 청춘의 뛰는 심장을 빽빽한 입시 일정으로 묶어두고 저 한없이 유연한 두뇌를 문제풀이 경쟁으로 굳어가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론 ‘요즘 아이들 불쌍하다’느니 ‘우리나라에선 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느냐’느니 푸념한다. 심지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따위의 외국 노벨상 수상자들 말을 교훈처럼 소개한다. 어른들의 정신분열증이다.

3. 올해 대선에서 이타적 투표에 나설 유권자들은 투표권조차 없는 마이너리티인 어린이·청소년들을 기표소에 한 명씩 데리고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자. ‘네게 꿈과 희망을 주는 후보는 누구니?’ 물은 뒤 아이의 대답을 듣고 붓두껍을 드는 것이다. 그런 어른들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의 세상은 더 행복해질 테니.

박용현 사회부장 pia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