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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각하의 반면교사 / 강희철

등록 2012-11-21 19:19수정 2012-11-21 21:15

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의회의 탄핵안 가결에 직면한 닉슨은 1974년 8월 하야를 결심한다. 하릴없이 쫓겨나느니 내 발로 걸어나가겠다는 마지막 오기가 발동한 것인데, 그래도 그냥 짐을 싸기는 못내 억울했던지 사임하기 바로 전날 키신저를 불러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지? 이 모든 게 그저 단순한 주거침입에 불과하잖아?”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호기를 부리다 더 큰 화를 자초한 닉슨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특검’을 사실상 강제종료시키고도 면죄부를 받았다. 그의 부인과 아들까지 일가붙이 모두가 처벌을 비켜갔다. 재임기간 내내 닉슨 못지않은 자기편의적 정신세계를 보여준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크게 안도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특검이 파다 만 갱도엔 뇌관과 불발탄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대통령 아들이 동원한 6억원의 최초 출처가 오리무중이다. 그가 큰아버지에게서 현금 뭉치를 빌렸다는 날-그 날짜도 두 사람의 검찰 진술과 특검 진술이 다르다-의 행적은 아귀가 맞지 않고, 그때 썼다는 차용증의 원본 파일은 제출도 확인도 되지 않았다. 큰어머니라는 사람이 압수수색을 나간 특검팀에 했다는 반문-“뭔 돈? 누가 (빌려줬다고) 그래요?”-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그럼에도 시한에 쫓긴 특검은 이 돈의 ‘근원’을 찾는 데 실패했고, 큰아버지가 조카에게 건넨 증여라고 결론을 내고 말았다.

그러나 만약 그 돈이 특검 기간에 때마침 불거진 ‘다스 130억 비자금’과 연결돼 있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5년 전 그 사건을 수사했던 비비케이(BBK) 특검은 거액의 비자금을 찾아내고도 그냥 덮어 버렸는데, 다스가 이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라 큰형의 것이라면 대선이 끝난 시점에서 굳이 가려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취임을 앞둔 이 당선인 쪽에서 비비케이 정호영 특검과 같은 고교·대학을 나온 검찰 고위직 출신 ㄱ변호사 등을 앞세워 치열한 입막음 로비를 벌였다는 법조계 인사들의 증언은 130억원의 성격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 대통령은 여전히 검찰은 내 편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듯하다. 후보 시절 비비케이 사건에 대한 보은인사로 시작된 이 대통령과 검찰 내 일부 세력의 밀월은 임기 말에 다다른 지금까지도 끈적하다. 충성과 특혜성 인사를 주고받아온 이들의 ‘거래’로 인해 검찰 조직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짙은 정치색에 오염돼 있다. 특검을 부른 검찰의 내곡동 사저 수사도 실은 이 대통령과 대학 동문인 ‘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형사1부장’이 저지른 일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 대통령은 ‘죽은 권력’에 유달리 강한 검찰의 ‘하이에나 속성’도 잘 모를 성싶다.

앞으로 누군가가 ‘다스 비자금’을 검찰에 고발하면 5년 동안 굳게 막아놓았던 봉인은 풀릴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는 이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 사라지는 내년 2월 이후에나 본격화하겠지만,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대통령 아들이 가져다 쓴 6억원이 어느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인지, 그에게 재산상 이익을 몰아준 사저 터 매입 계획은 누가 입안하고 결정한 것인지, 비비케이 특검이 왜 다스 비자금을 덮었는지를 모두 밝혀야 할 것이다. “정의는 비록 늦게라도 어김없이 오는 것”(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솔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임을 목전에 둔 궁색한 처지임에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닉슨은 훗날 남긴 책에서 “(워터게이트 호텔 도청과 같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할 도덕적 가치기준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비록 만시지탄이긴 했지만.

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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