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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영화의 힘과 다양성 / 강성만

등록 2012-12-05 19:17

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1억2000만명. 올 한해 한국영화의 예상 관객 수다. 첫 1억 돌파다. 4년 전과 견줘 갑절 가까이로 늘었다. 올해 외국영화 예상 관객은 5000만명이란다. 한국영화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한국 영화인들이 축배를 들어도 되지 않을까? 관객들도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올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두 영화,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한국 상업영화의 힘을 한껏 과시했다. 치밀한 스토리와 세련된 만듦새에 관객들은 흡족해했다. 한국영화의 성숙이랄까, 힘의 크기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기억을 들춰봤다. 숫자,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기억의 농도와 꼭 함께 가진 않는다. 영화 관람은 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몇몇 영화가 떠올랐다. 외국인 한 명을 뒤섞어 한국인의 집단의식 문제를 깊숙이 들췄던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를 보면서 정말 재미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그들만의 생각과 언어를 통해 보여준 김조광수 감독의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두결한장)도 유쾌한 영화였다. 내가 잘 몰랐던 세계를 발견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일 것이다. 현실 그리고 이상을 견고하게 자신만의 프로페셔널리즘으로 교직해낸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거짓과의 동거를 거부한 한 인간의 순교자적 결단을 생생히 극화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까지. 그러니까 내 기억의 저장고에 들어간 영화들은 주로 3만(<다른 나라에서>), 5만(<두결한장>)밖에 들지 않은 저예산 독립영화들이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독립운동 하듯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영화들이다.

영화는 사람 사이에 길을 낼 수 있다. 영화가 화제에 오를 때 사람들 사이의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누그러든다. 영화 이야기를 하는 데 적의감을 드러낼 순 없다. 하지만 단 3만명이 본 영화라면? 길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축배를 권하지만, 상당수 영화인은 시무룩하다. 평단의 호평을 받은 <터치>의 민병훈 감독은 극장 쪽의 횡포를 고발하며 스스로 조기 종영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피에타>의 관객은 60만명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를 포함해 최근 9년 한국 다양성 영화 흥행 50위를 추려놓은 통계를 보니, 올해 만들어진 영화는 <피에타> <두 개의 문> <두결한장> 단 세 편뿐이다. 연도별 평균치에도 못 미친다.

영화산업에서 대기업의 힘은 투자와 상영을 넘어 이젠 제작, 기획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기억보다는 2시간의 짜릿한 흥분에 초점을 맞추게 될 대기업의 미학이 영화계를 전방위적으로 장악해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의 영화비평가 데이비드 덴비는 최근 펴낸 저서 <영화는 미래가 있는가?>에서 미국의 영화산업이 전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변질했다며 ‘영화적 다양성의 상실’을 한탄했다. 뉴욕이나 시카고 등 몇몇 대도시에서나 어른 영화를 볼 수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단순 오락물로 등치시키는 데 찬성할 영화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 편의 영화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수긍하게 될 때, 세계와 타인에 대한 나의 이해는 깊어질 것이다. 그런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의 기반은 단단해진다. ‘싸이 대박의 원천’에 대한 분석 가운데 비교적 설득력이 있었던 게 그의 ‘매우 특이한’ 개성이었다. 영화산업의 힘을 위해서라도 한국영화에서 다양성은 힘차게 숨쉬어야 한다.

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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