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첫 중국 통일의 기틀을 다진 진나라 상앙이 개혁에 시동을 걸 무렵의 일이다. 조상 덕에 대를 이어 놀고먹는 귀족들의 특권을 박탈하고 전쟁에서 세운 공에 따라 땅과 관직을 주는 한편 토지매매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변법을 시행했지만, 1년이 지나도 세상인심은 ‘갸우뚱’ 모드였다.
하여 고민이 깊던 상앙의 레이더에 태자가 포착된다. 법을 어긴 것이다.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차마 태자의 목을 건드릴 수 없었던 상앙은 대신 태자의 사부 둘에게 치도곤을 안긴다. 이 일화를 전하며, 사마천은 “그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 새 법령을 지켰다”고 <사기>에 적었다. 요컨대 개혁을 아무리 외쳐도 주체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전엔 민심이 꿈쩍도 않더라는 얘기다.
이제 다음 대통령이 정해졌으니, 앞으로 가장 자주 듣게 될 단어는 개혁, 쇄신 등속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국민이 점찍은 예약 1순위는 정치쇄신이다. 왜 그런지는 지난 대선을 잠시만 복기해 봐도 알 수 있다.
정치권은 이번 대선에서 기사회생했다. 여야의 거대 정당을 공히 지옥의 문턱까지 몰아간 ‘안철수 현상’은 도저한 정치불신이 응축된 결과였다.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 정치를 쇄신하겠다는 안철수의 한마디에 유권자의 과반이 열광했다.
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우리 정치권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실제로 면책·불체포 특권 같은 추상적인 것 말고도 무수한 특전을 누리고 있다. 세비라는 이름의 연봉 1억4000만원에 1억원 가까운 수당과 지원금이 별도이고, 전속 보좌관 7명에 2명의 인턴까지 둘 수 있는데, 이들의 급여 4억원은 따로 지급된다.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가 나오고, 기름값은 국회에서 대주며, 비행기(비즈니스석)와 케이티엑스(KTX)는 공짜로 이용한다.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지내도 65살이 넘으면 다달이 120만원의 연금을 평생토록 받는다. 이렇게 하나둘 헤아리다 보면 200가지가 넘는다.
이게 얼마만한 수혜인지는 다른 나라 의원들과 견주어보면 한결 분명해진다. 스웨덴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최연혁 교수(쇠데르퇴른대)는 그 나라 국회의원이 “세상에서 가장 고된 직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국회는 1년 중 여름 두 달을 뺀 10개월 내내 열려 있는데, 급여는 사기업 중견간부보다도 낮다. 전속 보좌관이나 비서, 운전기사가 모는 차량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입법은 의원이 스스로 공부해서 한다. 공무상 여행 경비는 영수증을 제시해야만 실비 정산을 받을 수 있고, 비행기는 가장 저렴한 이코노미석, 숙박은 중급 호텔 이상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최소 6년 이상 의원을 지내야 연금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국민에게 받은 만큼 제구실을 못했다면 자진해서 ‘밥그릇’ 크기라도 줄였어야 했는데, 우리 정치권은 그런 염치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최저임금 시급이 겨우 6% 오르는 사이 의원들은 세비를 20.3%나 인상했다. 한 해 20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여야가 합의만 하면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의원 연금 폐지는 공약 목록에 올려만 놓았다. 그나마 ‘세비 30% 삭감안’을 민주당이 발의한 시점은 안철수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던 12월3일이었다. 이런 시늉조차 하지 않은 새누리당은 언급할 거리조차 없다.
이제 대선은 막을 내렸고, ‘안철수 쓰나미’도 모면한데다, 앞으로 3년은 큰 선거도 없으니 다행이라고, 선방했다고 정치인들은 안도하고 있을까? 진정 재벌의 방종과 탐욕에 재갈을 물리고,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탈선을 문책할 작정이라면, 정치권은 먼저 제 살 깎기로 곡진한 의지부터 보여줄 일이다. 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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