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반역자가 될 위험마저 무릅쓰고 스파이 짓을 하게 되는 이유로 흔히 네 가지가 꼽힌다. ‘생쥐’(MICE)가 그것이다. 돈(Money), 이념(Ideology), 타협(Compromise) 또는 강압(Coercion), 자기도취(Ego)의 알파벳 머릿글자를 모은 말이다. 이 가운데 타협은 상대에게 약점을 잡혀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사례다. 대개 공개하기 어려운 개인적 비밀이 약점이 된다. 큰 비밀일수록 쉽게 말려드는 것은 물론이다. 비밀을 아는 자의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비밀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이가 존 에드가 후버(1895~1972)다. 그는 1924년부터 숨질 때까지 무려 48년간 미국 연방수사국장을 지냈다. 정부 기관장으론 미국 역사상 최장 재임 기록이다. 당시엔 금기시된 동성애자이자 마피아와 결탁했다는 의혹도 그를 끌어내리지 못했다. 8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 해리 트루먼, 존 케네디, 린든 존슨 등 여러 대통령이 그를 해임하려다 마음을 바꿨다. 무엇보다 의회 쪽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후버의 힘은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 등의 비밀을 모아 별도로 관리한 개인파일에서 나왔다.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특히 권력자의 비밀은 이해관계가 걸린 개인·조직·국가의 좋은 표적이 되고, 결국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해 국민에게도 큰 해를 끼치게 된다. 이런 덫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은 처음부터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뿐이다. 중국 후한 시절 명신이었던 양진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부하 관리가 뇌물을 주려 하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아는데 무슨 소리냐”라며 거절했다. 사지(四知)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한다. 서양에도 ‘벽에는 귀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안기부와 국정원의 불법도청을 탓하기에 앞서,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먼저 몸과 마음부터 가다듬을 일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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