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요코하마에 있지 않다. 필리핀 마닐라에 있다. 중국이 남동쪽으로 약 970㎞ 떨어져 있는 섬들과의 오래된 관계에 대해 말할 때 종종 언급되는 사실이다. 중국은 중국 말과 문화를 전파하는 공자학원이 필리핀에 3곳 있다는 점도 자랑한다. 문화행사에 참여할 수 없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중국어 방송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1996년 필리핀의 10대 무역국에도 들지 못했던 중국은 현재 무역규모 300억달러로 3대 무역국이 됐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행사는 필리핀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공자학원만 해도 인도네시아 7곳, 오스트레일리아 9곳, 일본 12곳, 한국 17곳 등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다. 이런 것만 보면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아시아에서 매우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스토리의 일부분일 뿐이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소프트파워 행사에만 국한하지 않고 있다. 1994년 필리핀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있는 미스치프 암초(중국명 메이지자오)에 시설물을 설치함으로써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에 개입했다. 중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중국의 레토릭은 도를 넘은 것이다. 중국의 ‘남해구단선’(nine-dash line)은 남중국해에서 가능한 한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2012년 중국의 군비 투자는 11%나 증가했는데, 이는 이 지역의 군비경쟁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중국은 소프트파워 접근법으로 주변 국가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드파워가 정확히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예컨대 필리핀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미국과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필리핀은 2012년 미국과 대외군사차관을 두 배 늘리는 방안을 논의했고, 군 기지에 미군의 접근을 용이하게 했다. 이런 현상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이런 접근법은 사실 미국을 흉내 낸 것이다. 1990년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변화하는 세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프트파워 개념을 고안했다. 그는 미국이 하드파워를 포기할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미국이 냉전 말기 군사력의 효용성이 감소하는 것처럼 보이던 시기에 외교와 경제관계, 문화교류에 대한 의존을 점차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런 이중 접근을 ‘맥도널드의 소프트파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맥도널 더글러스(보잉에 합병된 미 항공기 제조사)의 하드파워를 필요로 한다’고 표현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보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주먹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접근법은 이라크, 아프리카, 이슬람 세계 등지에서 명백히 실패했다. 미국의 하드파워는 소프트파워의 목표를 약화시켰다. 미군을 동행한 국제 구호원들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받은 아프리카인들은 이런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우려했다. 이슬람 세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카이로 연설에 박수를 보냈을지라도 무인기(드론) 공격에 따른 민간인 피해가 계속되는 것을 주시했다.
미국은 소프트파워가 군사적 지배를 위한 눈가림용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이를 재평가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중국의 뚜렷한 실패를 보면서 미국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모두 키우려는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도 두 가지를 모두 갖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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