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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어깨에 힘 빼고 살기

등록 2013-01-22 19:52수정 2018-05-11 15:12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말하기 부끄럽지만 솔직히 그랬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을 떠올리며, 그래 노령연금 20만원씩 준다잖아 하면서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남편 몫도 내 것이야 하면서 한달에 40만원을 폼나게 반납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네…. 이제 내가 받을 국민연금이 노령연금 때문에 축날까 봐 근심스러워졌다. 나 자신이 이익집단이 된 듯 한심스러워 마음을 추스르려고 <성철스님 화두참선법>을 꺼내들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씀이 알쏭달쏭하고 어려워서 범접을 못했는데 큰스님을 마지막까지 모셨던 원택 스님이 엮어낸 책을 읽고 보니 성철 스님은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실천적인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분이었다.

화두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장에서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것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딱 부러지게 지적하였다. 첫째는 돈이다. 참으로 돈은 독사보다 무섭고 비상보다 치명적이다. 돈만 보면 모두 고꾸라지고 미쳐버린다. 둘째는 이성이다. 남자는 여자조심, 여자는 남자조심 하라는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명예다. 바로 이름병이다. 병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재물병이나 이성병보다 이름병이다. 재물병과 여자병은 결심만 단단히 하면 벗어날 수 있지만 이름병은 한번 빠져버리면 고치기 어렵다. 사리분별이 없어지고, 익숙해지면 평생 생활로 굳어져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하셨다.

무릎을 쳤다. 도 닦는 사람이 아니라도 모두가 살아가며 경계해야 할 말씀이구나 싶었다. 공직자윤리강령에라도 넣고 싶은 구절이었다. 헌법재판소장 이동흡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나오는 온갖 이야기들은 낯뜨거웠다. 국민의 세금을 독사나 비상으로 알고 겁내기는커녕 개인적으로 써도 되는 것으로 본 게 아닌가 여겨지는 일들이 주렁주렁 딸려 나왔다.

흔히 한번 뜬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올랐던 사람은 평범한 삶을 살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들이 인기가 사라지면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세상이 나를 잊었구나 하는 상실감에 우울증을 앓는다고 한다. 한번 이름을 얻고 명예를 가졌던 사람들도 평생 떠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때로는 착지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뜀틀경기를 보면 아무리 높고 아름답게 솟아올라도 착지가 불안하면 감점이다. 이름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지 오래인데도 나 여기 있소 하면서 세상에 드높게 떠 있기를 바라는 세태 역시 모두 성철 스님이 말씀하신 그 무섭다는 이름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게다.

최근에 <케이팝스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무릎을 쳤다. 심사위원인 박진영씨가 끊임없이 지적하는 사항이 바로 어깨에서 힘을 빼라는 주문이다. 그래야 소리가 크게 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붓글씨를 배울 때도 어깨에서 힘을 빼라 했고, 국선도를 배울 때도 조교가 굳어 있는 어깨를 풀어주며 힘을 빼라고 했다. 야구나 골프 선수들도 스윙을 할 때 어깨에 힘을 빼야 장타가 나오고 투수도 수영 선수도 어깨에 힘을 빼야 속도가 나온다고 한다. 모두 힘을 빼야 큰 힘이 제대로 나온다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처방이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깨를 축 내리고 힘을 빼고 사는 것이 진정으로 강해지는 방법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어깨에 힘을 주는 것도 이름값이나 명예욕의 또다른 분출이다. ‘내가 누군데, 나는 대접받을 만해’라는 특권의식의 발로다. 이동흡 재판관은 평생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 인생을 산 것이다. 대접만 받으며 살아와 당연히 누릴 것을 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가 어깨에 힘을 빼고 살았다면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발가벗겨지는 꼴을 왜 당했겠는가. 본인 인생의 정점이자 국민들이 가장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헌법재판소장 자리를 놓고 그가 힘있는 발언 한마디 못하는 것은 그만의 부끄러움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부끄러움이다. 인사청문회를 요행히 통과한들 과연 기쁠까. 그래도 그런 삶이 성공한 삶이라며 끝까지 버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노령연금 20만원 받아 무얼 하겠다고 용을 쓴 것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짓이었구나 싶었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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