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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굳세어라, 공직자 / 박용현

등록 2013-02-18 08:36

박용현 사회부장
박용현 사회부장
종심과 이순의 나이를 넘긴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인사 검증에 불만을 털어놓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투정을 보는 듯해 민망했다. “가정이 파탄되기 일보직전으로 몰렸습니다. 당하여 보지 않은 사람들은 추측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이런 식으로 하는가. 모든 인생을 살아온 것 중에 뭐라도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부분은 변명을 다 해야 되고.” 이렇게 나약한 이들에게 나라의 중책을 맡기고도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었겠느냐는 안도의 큰 숨을 쉬게 된다.

고위 공직자는 국민으로부터 막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운명과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의사결정을 한다. 아무에게나 맡길 수도, 아무나 감당할 수도 없는 자리다. 그러니 공직자는,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나오는 표현처럼, “가혹한 기후에서도 번창할 수 있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를 가진 강인한 사람”이어야 하고, 따라서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은 대중으로부터 치밀한 검증을 받게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가혹한 비판에 직면했을 때 명예훼손이니 사생활 침해니 울먹이며 법에 호소하는 건 공직자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공직자의 자질인 강인함은 당당함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스스로 깨끗하고 능력이 있다면 검증 과정에서 당당할 테고, 당당하면 공직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공명정대하고 성공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깜냥이 아니라면 아예 공직을 자임하고 나서지 말 일이다. 선현들이 먼저 자신을 수양한 뒤 경세로 나아가라고 이른 것을 현대적으로 제도화한 게 바로 인사 검증이 아닐까 한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여러 고위 공직 후보자들도 이제는 투정이나 궤변 속으로 숨을 궁리는 버렸으면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당시 제도가 지방 전근을 갈 경우에도 국민주택 청약자격을 박탈하는 등 너무 가혹했다’는 변명이 새누리당과 정 후보자 쪽에서 나온다. 제도의 시행을 책임지는 게 공직자인데, 제도를 따르지 않은 것을 제도 탓으로 돌리니 말문이 막힌다. 잘못된 제도는 지키지 않아도 훗날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논리는 시민불복종운동이라도 주창하는 것처럼 들린다. 후보자로 지명된 뒤 ‘나라가 어려울 때는 어진 재상을 생각한다’는 구절을 떠올렸다는 정 후보자는 어진 재상이란 어떤 사람인가 다시 돌아보는 게 낫겠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에게 땅을 증여하면서 세금을 미납한 사실이 드러나자 28년 만에 지각 납부를 하고, 재산신고 때 이 부분을 누락한 것은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이 또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뒤늦게 들통이 났을 때 바로잡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외국 무기중개업체에서 고문으로 일한 경력에 대해선 군 내부에서조차 심각한 결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정작 본인은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다. 김 후보자가 취업하기 전 이미 그 업체 간부가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징역형을 확정받은 사건도 있었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취업을 했다고 주장할 셈인가.

혹시라도, 고위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강인함이란 게 부적격 사유가 드러나도 버티기로 일관하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오히려 진퇴를 깨끗이 하는 것이야말로 강인한 성정의 발현이다. 흠이 없어도 스스로 물러나 초야에 숨은 옛 선비들이 그랬다. “듣건대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면할 수 있고 중지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한다. 이제 벼슬이 이천석에 이르렀으니, 지위와 명예를 이룬 것이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후회가 있을까 염려스럽다.”(<한서> 소광전)

박용현 사회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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