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우리나라 사람 열에 아홉은 15분 안에 식사를 끝낸다고 한다. 뇌에서 배부른 걸 인식하려면 적어도 20분이 걸리는데 그런 포만감을 느낄 새도 없이 흡입의 수준으로 식사를 끝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 제 양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빨리빨리’ 패턴은 불감증을 유발하고, 불감증은 본의 아니게 탐욕의 기초가 된다. 먹는 것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 후보들을 보면서 그런 불감증을 실감한다. 그들은 너무 빨리 먹어서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환자들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욕심이 너무 많다.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퇴임기간 9년 동안 27억원, 국방장관 후보자는 7년 동안 12억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7년간 8억원의 재산이 늘었다. 놀랄 만한 금액이지만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후보자 자신이 군대를 면제받을 만큼 병약한 것은 기본이고, 자식 중에서도 딸들은 다 건강한데 유독 아들들만 아버지의 체질을 물려받아 군 면제의 전통을 잇는다. 자식 교육 때문에 위장전입한 인간적인 문제를 비교육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세금 탈루 의혹에 대해선 20~30년 지각 납부로 퉁치자고 한다.
고위 공직에 미련을 두지 않으면 그전에 돈을 얼마나 벌었든, 어떤 관행을 따랐든, 실수로 세금을 탈루했든, 심지어 병역을 면제받은 의혹조차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고위 공직을 욕망하는 순간 그것들은 가감 없이 양지로 끌어올려져야 마땅하다. 신상털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지만 고위 공직을 욕망하는 이들의 마음속엔 그런 개념이 애초에 없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가지려 한다. 자신은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에 살아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을 가졌어도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면 밥을 빨리 먹을 때처럼 계속 허기를 느끼게 된다. 결국 허겁지겁 먹게 되고 집착하게 된다.
수조원의 자산가로 대통령 후보에 나섰던 어떤 이는 자신의 천문학적인 재산에 관한 질문을 받고 전설적인 답변 하나를 남겼다. 자신이 빌 게이츠만큼 재산이 많았다면 기부를 펑펑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는 것이다. 돈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면 지금 얼마가 있든 폭식하듯 계속 더 큰 돈을 버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오래전 뜻하지 않은 돈이 생겨 우리 가족의 허브 역할을 하는 두 명의 누이에게 500만원을 맡긴 적이 있다. 누이들은 그 돈을 가지고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봄이 되면 식구들에게 노란 원피스나 화사한 양말을 선물했고, 가을이면 전어 파티를 벌였으며, 큰형의 치과 병원비와 조카들의 학비를 후원했고, 가족의 이름으로 어딘가에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5년이 넘게 그 돈은 그렇게 두루 쓰였다. 그때 나는 500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무엇을 얼마를 가졌든 느끼지 못하면 ‘자기’로 살기 어렵다. 그러면 과식하듯 탐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새달 3일 스위스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급여와 상여금을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한 사람이 일년에 수백억원씩의 돈을 받는 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일인지를 강제로라도 깨닫게 하는 법률이다. 기업의 구성원에게도 그런 추세인데 고위 공직자야 더 말해 무엇하나.
지금 내 상태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면 늘 허기를 느끼게 되고 집착하듯 욕심내다 보면 그게 바로 탐욕이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판을 치는 고위 공직 사회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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