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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 에서] ‘강 건너’ 사람들의 순망치한 / 이제훈

등록 2013-03-27 19:21

이제훈 국제부장
이제훈 국제부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이웃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1360㎞에 이르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양안엔 조선인민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이 경계를 서고 있다. 몰래 강을 건너다 총에 맞아 죽거나 잡혀가는 북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강은 남과 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처럼 중무장한 무인지경이 아니다. 강가엔 멱을 감는 아이, 빨래하는 아낙이 즐비하다. 양안 마을은 서로를 ‘강 건너’라 부른다. 신의주~단둥, 만포~지안 등 두 나라 정부가 허용한 16곳의 국경세관으로만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건 아니다. 삶은 총이나 법보다 질기다.

중국의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땐 <아리랑>의 김산 등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중국 공산당을, 한국전쟁 땐 중국의 인민의용군이 북한을 도왔다. 마오쩌둥은 ‘순망치한’이라는 말로 한국전쟁 참전을 설명했고, 큰아들 마오안잉을 보냈다. 마오안잉은 미군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문화대혁명의 광기를 피해 십수만의 중국인이, ‘고난의 행군’ 땐 숱한 북한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강을 건넜다. 두 나라의 ‘전통적 우호관계’의 바닥엔 김산·마오안잉들의 피가 흐르고, ‘강 건너’ 사람들이 일궈온 일상의 두터운 더께가 있다. ‘강 건너’ 사람들의 곡절 많은 삶이 궁금한 이에겐 재중동포 3세인 장률 감독의 영화 <두만강>을 권한다.

시진핑 체제 중국의 대북정책이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우려해 북한의 나쁜 행동을 계속 참아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과연 그런가.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한반도) 관련 입장은 매우 명확하고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무엇이 변화가 없으리라는 말인가.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한 말의 순서에 답이 있다. ‘평화와 안정’이 ‘비핵화’에 우선하므로, 비핵화를 명분으로 북한의 급변사태(정권 붕괴)를 초래할 전면적 제재·압박엔 나설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중국으로선 당연한 일이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13억의 중국에서 양극화·부패 등 심각한 국내 문제를 딛고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의식주에 부족함이 없는 여유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국제정세, 특히 국경지역의 안정이 사활적이다. 처지를 바꿔, 압록강·두만강변에 조선인민군이 아닌 한국군이나 미군이 총을 들고 서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중국도 ‘북한의 변화’를 꾀한다.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개방선도구와 나진선봉 지역, 신의주 황금평 특구 등의 개발을 매개로 북한의 개혁개방과 동북아경제권 진입을 도우며 대북 영향력을 높이려 한다. 북한 대외무역의 90%(남북교역 제외)를 차지하는 양대 강국(G2) 중국의 경제력이 무기다.

핵·미사일 따위를 앞세운 북한의 ‘자해공갈식 협박’에 중국이 단호하게 맞서지 않는다고 비난해봐야 소용이 없다. 희망이 정책이 아니듯, 증오나 비난도 정책이 아니다. 상대의 처지를 존중해야 정책의 공간이 열린다. 중국이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두려움을 뒤로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집중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압록강·두만강변의 (통일)한국군을 중국이 수용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남이 바뀌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박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남북 쌍방의 화해와 협력에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 시진핑 주석의 말을 의례적인 외교 수사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훈 국제부장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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