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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핵무장의 마력과 환상 / 이종원

등록 2013-04-16 19:04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북한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병진노선’을 내걸었다. 3월31일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김정은 시대의 ‘전략적 노선’으로서 공식 채택했다고 한다. 이를 지지하는 논설이 뒤따르고, ‘병진’이라는 슬로건 보급을 목적으로 한 노래까지 <로동신문>에 등장했다.

‘핵 선제타격’을 공언하며 ‘전쟁’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경제’가 다시금 강조되기 시작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 그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일각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김정은 신체제의 정책이 군부 강경파에 완전히 장악된 것이 아니라는 징후로 해석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개혁파’로 분류되어 좌천되었던 박봉주 전 총리도 재기용되었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핵무장이 경제 건설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역설하고 있는 점이다. 중앙위원회에서 행한 김정은 제1비서의 보고가 흥미롭다. 그는 “지금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를 군비경쟁에 끌어들여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난관을 조성하려고 책동”하고 있다고 하면서, “병진노선은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나라의 방위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큰 힘을 돌릴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핵개발을 정당화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군비경쟁 회피와 국방비 억제를 대내적으로 강조하는 데에 중점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핵무장이 군사비 삭감과 경제 건설에도 도움이 된다”는 ‘궤변’을 전개한 것은 사실 북한이 처음은 아니다.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50년대 소련과 미국이 핵무기 경쟁을 펼칠 때 그 기반이 된 전략개념이기도 했다. 미국에 비해 열악한 경제 상황을 통감한 소련의 흐루쇼프(흐루시초프)는 “군사력을 군인의 외투 숫자로 측정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명언’과 함께 병력 100만명의 삭감을 단행하고 경공업을 중심으로 경제 재건에 주력하려 했다. 그 대신 흐루쇼프가 의존했던 것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이었다. 통상병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최소한의 핵 억지력을 보유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판단이 배경에 있었다. 또한 대량살상무기인 핵은 실제로 사용한다는 ‘위협’을 강하게 할수록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 유명했던 흐루쇼프의 언동은 그의 개성이라기보다 계산된 전략의 측면이 강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미국 아이젠하워 정권의 전략도 이와 닮은꼴이었다. 온건 보수주의자였던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 이래 팽창한 군사비를 대폭 삭감했다. 그 공백을 메우려 한 것이 마찬가지로 핵무기에 의존한 ‘대량보복전략’이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이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핵무기 경쟁과 위협의 응수는 제3차 세계대전을 유발할 수도 있었던 쿠바 위기로까지 치달았다. 핵무기는 기대처럼 그리 ‘경제적’이지도 않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자신이 이임연설에서 경종을 울린 것처럼 핵무기 경쟁이 그 자체를 기득권으로 하는 ‘군산복합체’를 낳았기 때문이다. 흐루쇼프도 쿠바 위기 때 미국에 연약한 자세를 취한 것이 빌미가 되어 군부 보수파에 의해 실각되는 말로를 맞았다.

핵의 비확산이 세계적 규범이 된 지금 핵무장은 더는 ‘경제적’이지 않으며, 모든 과제를 해결해 주는 마법의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외교적 부담과 손실이 엄청나게 크다. 핵을 가진 채로 안정적인 대외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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