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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함께 써보는 박근혜, 최서희

등록 2013-04-22 09:31수정 2013-04-22 10:04

1987년~1989년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토지>에서 최서희 역을 연기한 최수지와 박근혜 대통령
1987년~1989년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토지>에서 최서희 역을 연기한 최수지와 박근혜 대통령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③
비극적 가족사와 금의환향, 그러나 혼자인 삶
두 얼굴이 겹쳐지는 까닭을 이해하실 겁니다.
불현듯 평사리로 돌아온 서희가 대청에 올라 아득한 악양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앞으로 흩날리는 꽃잎들은 지나온 날들의 편린 같습니다. 최서희? 모를 리 없겠죠. 우리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독자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소설 <토지>의 주인공. 피는가 싶더니 눈처럼 흩어지는 꽃들이 두 사람을 그렇게 이어주다니.

어미 별당아씨는 어린 딸을 남겨두고 떠나버렸습니다. 아비는 여종 귀녀에게 살해당했죠. 친척 조준구는 사고무친 서희에게서 집이며 땅이며 재산을 모두 강탈합니다. 권문세가의 고명딸이었지만 모진 풍파 속에서 서희는 고집 세고 신경질적인 아이로 성장합니다. 그런 그가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생래적인 영특함과 시련 속에서 싹튼 지혜였습니다. 장성한 서희는 두 아이의 어미이자 공동체의 보호자로서, 남편이 투신한 독립운동의 은밀한 지원자로 역할합니다.

님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오랜 절치부심의 세월, 그리고 극적인 금의환향, 그러나 여전히 혼자인 삶. 흩어지는 꽃잎 사이로 두 얼굴이 겹쳐지는 까닭을 이해하실 겁니다. 서희의 성격을 설명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겠지만, 아무래도 열쇠는 고집, 의지, 그리고 지혜로 집약될 겁니다. 철들면서 한과 지혜로 바뀌지만.

2006년이었을 겁니다. 강재섭 옛 한나라당 대표는 도산아카데미 주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나라당은 몰락한 부자 가문입니다. 자수성가해 다시 가문을 일으켜야 하는 <토지>의 최서희와 같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기득권 세력으로 온존하려 한다는 인식을 제거하고 따뜻한 우파로서 실용주의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강 전 대표가 님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님은 그의 예언을 충실히 이루어냈습니다. 님이 당의 간판으로 나선 선거에선 한번도 진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선거, 당내 경선에선 단 한 번 패배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건 5년 뒤 더 큰 반전을 위한 후퇴였을 뿐입니다. 이제는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서희가 악양들을 바라본다면, 님은 한반도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랜 우여곡절 끝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의 조각이 완결됐습니다. 취임 후 무려 60여일 만입니다. 처녀 출항에 나서는 ‘박근혜호’를 향해 마땅히 축원이 쏟아져야겠지만, 안팎은 무덤덤합니다. 여당 의원들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불통과 아집, 편협과 오기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하긴 이동흡부터 윤진숙까지 돌아보면 끔찍하기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지난 금요일 여당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고집불통은 유언비어’라고 했더군요. 지난 일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는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윤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던 날, 님은 예의 그 ‘식사 정치’를 이어갔습니다. 그날은 국회 정무위, 기획재정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 오찬을 함께했죠.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예전보다 상당히 진전된 것입니다. 그보다 더 나가는 것은 부담됩니다.” 국회의원은 여당 소속이라 해도, 각자가 입법기구입니다. 행정부 수장이 입법기관에 해서는 안 될 말이었습니다. 그건 입법 가이드라인이니까요. 권위주의 정권에서나 가능한 관행이죠. 그러고 보니 옛날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고 내무부 장관 해임안을 의결했다가 공화당 수뇌부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코털 뽑히고 똥오줌 쌀 정도로 두들겨맞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예산안 날치기에 주먹까지 동원했던 여당 의원에게 손수 격려 전화를 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기억납니다.

물론 야당의 태도가 달가운 건 아니었습니다. 후보자 혹은 내정자가 범죄를 저질렀거나, 국민의 의무를 회피했거나, 부도덕한 짓을 했다면 그의 임명은 온몸으로 막아야 합니다. 곳간을 거덜내고, 국사를 돈벌이로 삼는 자를 청지기로 임명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자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그 자질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되, 임명 여부는 인사권자에게 맡기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 공과 책임은 온전히 인사권자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국회의원이 했다는 쓴소리가 기억납니다. “두고두고 사고 칠 사람인데, 야당이 목숨 걸고 막아주려는 이유가 뭐야?”

대북 메시지의 혼선에 대해서도 말이 많더군요.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의 뜻을 몰라 총리, 통일부 장관, 안보실장 등의 발언이 엎치락뒤치락 뒤엉켰습니다. 이 사달을 겪고 나서 관련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답니다. 여성 대통령의 섬세한 시각을 고려하지 않았다! 국사에 여성적 시각이라니요. 분명한 건 여성 대통령이라고 추어세우는 건 아니었습니다. 불경죄를 범할까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 실은 협량하다는 뜻이었습니다.

평사리로 돌아온 서희는 서릿발 같은 일제의 감시와 견제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지리산으로 숨어든 운동가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아이들 문제를 소홀히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안하무인의 성정과 고집, 불같은 신경질로는 감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련은 서희를 품이 너르고, 마음씨 따듯하며, 지혜로운 어머니로 변모시킨 것입니다. 탱화 속 관세음보살이랄까요. 그렇다고 그 가슴 한켠의 세모시처럼 순정한 비애를 지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뜻하는 모든 걸 이루었지만, 그는 혼자였습니다. 종 출신의 지아비는 언제나 먼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걸 얻을 순 없습니다. 지혜롭고 아름다운 서희 이름 위에 님의 이름을 써봅니다.

목련이 벌써 지고 있습니다. 고고한 꽃, 그러나 자기애가 강한, 그래서 무거운 꽃. 벚, 매실, 살구, 진달래, 개나리… 가벼운 꽃잎들은 아름다운 기억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흩어집니다. 그러나 목련은 그 무게 탓에 너절하게 길바닥을 뒹굽니다. 아름다운 기억마저 밟혀버립니다. 쓸쓸한 일이죠.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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