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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아빠와 아들의 일자리 전쟁? / 김영배

등록 2013-04-28 19:12

김영배 경제부장
김영배 경제부장
돌이켜보면 아버지와는 끝내 그리 친해지지 못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게 되고, 내내 고단했던 생애에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되긴 했어도 속을 툭 털어놓을 만큼 편안한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4년 전 임종하지 못한 사실과 함께 못내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피는 못 속이는 것인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대개 그런 건지, 데면데면한 부자 관계는 나와 아들 사이로도 이어진 것 같다. 아들 녀석이 질풍노도의 사춘기 피크를 지난 지금은 긴장 관계의 각도가 많이 둔해졌어도 아내나 딸 없이 둘만 앉아 있을 때면 대화의 소재가 금방 바닥을 드러내면서 곧 서먹서먹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지난 24일 국회 상임위(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정년 60살 의무화 법안’(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일자리 전쟁을 일으켜 세대 간 갈등을 격화시킬 것이라는 식의 걱정 어린 발언은 아버지와 나, 또 나와 아들의 관계를 새삼 떠올리게 하며 실없는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서먹서먹 불편한 관계를 넘어 이제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60살 정년 연장을 의무화할 경우 중년층 인력의 퇴직 경로가 일정 기간 막혀 청년층 인력의 신규 채용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은 산술적으로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바이다. 더구나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만 해도 60살 이상 정년 기업의 비율이 90%를 넘었는데 지금은 40%를 밑도는 실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경제 5단체 대표들이 26일 긴급회동을 통해 20개 현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힐 때 60살 정년 의무화 법안을 제일 첫머리에 올리면서 거론한 반대 논거이기도 하다.

아무렴, 일개 가정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젊은이들의 앞날이 더 중요할 터이다. 그러니 60살 정년 의무화 법안은 도로 물려야 할까. 그러는 게 나을지도 혹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론 든다. 다만, 좀더 생각해볼 여지는 있을 것 같다.

먼저 정년 연장이 신규 채용에 지장을 줄 가능성은 초기 수년간에만 제한된다는 점이다. 지금의 실질 정년이 대개 55살이라 치고, 이걸 60살로 올린다고 해도 5년 뒤에는 모든 게 원위치로 돌아간다. 정년 연장 탓에 신규 채용을 못하거나 덜 하게 되는 기간은 5년이지 앞으로 줄곧 이어지는 게 아니다. 더욱이 그 기간에 기존 인력의 임금 조정이 이뤄지게 된다.

부모 세대의 정년 연장이 자식 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세 속에서 부모의 실직에 따른 소득의 공백은 그 부모를 직접 부양을 하든 않든 자식의 큰 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노릇일 테니. 앞으로 대략 10년 안팎(너무 과한 희망일까?) 일터에 머물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 나 또한 아들딸의 채용을 가로막는 방해물이고 싶지 않지만, 짐스러운 존재로 남게 되는 사태는 더더욱 바라지 않는 심정임은 물론이다.

무뚝뚝했던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드물게 따뜻한 기억 하나는 ‘연’과 얽혀 있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 날 아버지는 말려둔 대나무를 쪼개 연살을 만들고, 으깬 밥풀로 이걸 창호지에 붙여 모양 좋은 방패연을 만들어줬다. 그 겨울 내내 연을 들고 들판 이곳저곳을 많이 쏘다녔다. 그 시절 아버지한테도 ‘생존을 위한 생활’만이 아닌 소년의 꿈이 가슴 한켠에 있었던 것 아닐까 짐작해 본다. 60살 정년 연장 의무화 법안이 부모·자식 세대 간 불화의 씨앗이 아니라 화해와 공존의 실마리로 삼을 ‘연’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김영배 경제부장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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