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듯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영국의 계관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장시 <황무지>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입니다. 특히 다른 건 몰라도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문구는 아예 관용구가 되어버렸습니다. ‘4월’엔 으레 ‘잔인한’이란 꾸밈말이 따라붙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다보니 그 뜻을 묻는 물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4월이 잔인하다고? 얼어붙은 대지를 물 흐르게 하고, 잠 깨우고, 싹 틔우고, 꽃 피우고, 그리하여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을 왜 잔인하다고 하는 거지?
시 속에서 ‘잔인하다’는 건 늙은 무당, 점쟁이 노파에게 적용되는 것일 뿐입니다. 이제 쭈그렁 박이 되어버린 노년, 청춘의 찬란한 빛은 시기나 질투를 넘어 그의 가슴을 헤집어놓는 정한입니다. 약동하는 생명은 불임의 현실을 더욱 아프게 일깨워줍니다. 차라리 눈 덮인 동토가 그에게는 편안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고 4월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생명 창조의 자궁은 혼란입니다. 거대한 카오스에서 우주가 탄생했듯이, 썩을 것은 썩고, 깨질 것은 깨져야 생명은 탄생합니다. 4월의 찬란한 빛은 무질서와 혼란과 파괴에서 탄생합니다.
올 4월은 말 그대로 잔인했습니다. 특히 취임한 지 불과 40~50일밖에 안 된 님에게는 그러했습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무기 개발과 전쟁상태 선언, 일본 아베 정권의 침략전쟁 예찬 등 국가 안위는 물론 국가적 자존감과 직결된 일들이 동시다발로 터졌습니다. 서구인이 북한을 미치광이로 취급했다면, 중국인들은 일본 아베 정권을 아예 마약중독자에 비유했습니다. 그 속에서, 한반도 화해 협력의 실핏줄이었던 개성공단마저 폐쇄 직전 단계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혼란은 새로운 질서 창조의 기회입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둔사를 상투적으로 빌리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4월이 언 땅을 녹이고, 죽은 것들을 썩히고, 껍데기를 깨는 속에서 생명을 태어나게 하듯이, 모든 창조에는 혼란이 따릅니다. 사실 북 김정은 체제는 이번에 그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의 요구사항도 속셈도, 약점이나 강점도 나타났습니다. 잘만 하면 서로의 조건을 조정해 합의로 나아가는 틀을 만들 수도 있게 됐습니다. 더 말할 나위 없이 잔인했지만, 더없이 좋은 기회의 4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착잡하게도 기회의 선용보다는 상황의 악화 쪽으로 내몰리는 듯합니다. 이제 모든 가능성을 삼켜버리는 수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따지자면, 무엇보다 먼저 지도자들의 성급함을 꼽아야 할 것입니다. 김정은 제1비서는 새 리더십이 들어선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해 저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면전에서 칼을 휘두르는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깡패 식으로 체제 인정을 요구했으니, 누가 고분고분 그 요구에 따르겠습니까. 취임 이후 높은 지지율에 도취한 아베 총리는 애국주의와 국수주의 선동을 강화하다가 그만 사고를 쳤습니다. 미국 정부마저 정신 상태를 의심했으니 말입니다.
그동안 님은 비교적 신중했습니다. 저자세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말을 아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덜컥수를 놓고 말았습니다. 선전포고를 하는 것도 아닌데, 단 하루의 말미를 주고는 대화의 자리에 나오라고 통첩을 한 것입니다. 어떤 국가, 어떤 사람이 그런 자리에, 개 끌려나오듯이 나오겠답니까. 그동안 온갖 욕을 들어먹으며 허세 위세를 다 부려온 북한입니다. 그런 북한이 남쪽의 한마디에 돌연 꼬리 흔들며 납작 엎드릴 것이라고 누가 기대하겠습니까. 개성공단에 잔류한 사람들의 인도적 문제는 충분히 고려해야겠지만, 사실 그들은 북에 억류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입니다. 이것을 인도적 차원으로 문제화했으니, 북쪽으로서도 상당히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아니 울고 싶은데 뺨을 때린 격이 되었습니다.
님의 아버지가 성사시켰던 7·4 남북공동성명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1968년 1월 북한군 특수부대는 청와대를 습격했고, 11월엔 120명의 무장공비가 울진·삼척지역을 휩쓸고 다녔습니다. 거의 전쟁 수준의 도발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쪽은 1971년 북에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하고, 그해 8월 분단 26년 만에 처음으로 인도적 문제를 논의할 적십자회담이 열렸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남북의 밀사가 오가면서 일궈낸 결과였습니다. 이듬해에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에 기초한 공동성명을 남북이 동시에 발표합니다. 비록 양쪽의 정권이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악용되긴 했지만, 비상한 상황일수록 인내심을 갖고 협력의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결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님께선 아무런 사전 접촉도 없이 단 하루의 말미만 주고, 회담 테이블에 나오라고 통첩을 했으니, 그때 그 대통령의 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당시 정권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팀장으로 1년 가까이 남북을 오가며 협상을 벌이도록 했습니다. 북쪽의 파트너는 박성철 제2부수상이었죠. 신중함을 되찾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제 하루 남은 4월의 잔인했던 혼란이 새로운 질서 창조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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