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국제부장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지율이 70%를 웃돈다. 엔화 약세를 앞세운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를 되살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리라는 기대가 가장 큰 동력이다. 지금 일본인들은 극우 정치인 아베 총리가 다시 끄집어낸 메이지 시대의 ‘부국강병’ 구호에 환호하고 있다. 그 밑둥치엔 ‘잃어버린 20년’의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과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쓰나미가 안겨준 ‘몰락의 공포’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아베를 열렬히 지지하는 일본의 민심이 불길하면서도 애처롭다.
미국에선 톨레랑스(관용)의 상징인 ‘어퍼머티브 액션’(소수계 우대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텍사스대학 입학에 실패한 백인 여성 애비게일 피셔가, 이 제도가 헌법의 평등권에 반하는 역차별이라며 소송을 낸 탓이다. 1·2심에선 피셔가 패소했는데, 곧 연방대법원의 재판이 시작된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대학 입학과 취업·승진 등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1960년대 초에 도입돼 미국 사회의 다양성과 평등지수를 높여온 견인차다. 2003년 연방대법원이 소수계 우대 정책은 위헌이 아니라면서도 “언젠가는 없어질 제도”라고 단서를 달았는데, 그 ‘언젠가’가 지금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다만 입학·취업 경쟁에 치인 백인 청년들의 고통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세계인의 삶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위기의 주범인 국제 금융자본은 건재한데, 애꿎은 청년층이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발표를 보면, 세계의 15~24살 청년실업률이 12.6%다. 이 가운데 90%가 개발도상국에 몰려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크게 나빠졌고, 2018년까진 지금보다 더 나빠질 거란다. 국제노동기구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존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이라고 우려했다. 청년실업률은 중동(28.3%)과 북아프리카(23.7%)에서 특히 높다. ‘아랍의 봄’으로 불린 정치적 저항과 극단적 이슬람주의 확산의 밑둥치에 청년실업 문제가 놓여 있음을 간파하기는 어렵지 않다. 각국 정부에 긴축과 사회보장비 축소를 압박해온 국제통화기금(IMF)의 라가르드 총재조차 “아랍의 봄과 월가 점령 운동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양극화에 대한 불만이 주요 동기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할 정도다. 전쟁만 반평화가 아니다.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도 반평화다.
위화는 중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헤쳐온 민중의 생명력을 그린 장편소설 <인생>에서 “한 가족이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했다. 식구가 편안히 먹고살려면 좋은 일자리가 필수다. 어찌해야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을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식의 무한경쟁은 비정규직·알바만 양산하며 삶을 더 각박하게 한다. 노동시간 단축 없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방법이 없다. ‘저녁이 있는 삶’도 누리기 어렵다. 무엇에 기대어 노동시간 단축을 이룰까. 종교? 이념?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의 불쏘시개 노릇을 하는 종교나 이념보다는 연대가 낫지 않을까. 연대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나딤 아슬람은 아프가니스탄의 잔혹한 현대사를 다룬 장편소설 <헛된 기다림>에서 “인간의 품격은 가족의 범위를 얼마나 크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연대에 ‘젊은 그들’의 미래가 달렸다.
이제훈 국제부장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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