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휴전 상태에 들어간 지 60년이 된다. 60년이 되어도 평화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냉전이 종식된 뒤 불거진 북핵 문제도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6자회담 틀 안에서 북한은 “선 평화체제 수립, 후 핵문제 해결”을 주장해왔고, 한국과 미국은 “선 핵문제 해결, 후 평화체제 구축”을 주장해왔다. 북한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 안보 문제도 완전히 해소되기 때문에 핵문제도 자연히 해결된다는 논리를 폈다. 평화협정을 평화체제와 같은 개념으로 충분조건에 가깝게 주장한 것이다.
북한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모든 것이 풀린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풀려야 할 문제가 먼저 풀리지 않으면 평화협정 체결도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미가 주장하는 ‘선 핵문제 해결’ 역시 같은 논리다.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그것은 북-미 관계, 남북 관계가 정상화됐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 핵문제의 근원적인 해결과 평화협정 체결은 동일한 필요조건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북한이 충분조건에 가깝게 주장하는 평화협정이나 한·미가 충분조건에 가깝게 주장하는 북핵 문제 해결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해결할 용의가 있으면 ‘선후’를 ‘동시’로 바꿔 타결을 모색해야 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의 생존 전략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절충점을 찾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정전협정 60돌에 즈음해 다시 평화협정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핵 보유의 정당성을 법으로 명시했다. 그러니 이젠 ‘선후’가 아니다.
가능할까? 한·미와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모두가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마 북한도 비핵화 논의 없는 평화협정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과 한·미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평행선을 달리며 엇박자를 내게 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이 수십년간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협상이나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의제를 주장하면서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의 전략과 동일시돼왔다. 한국과 미국이 평화협정 대신 상위 개념인 평화체제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도, 평화협정 체결도 모두 미국 요소가 한반도 냉전 구도의 근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반도의 현재 정전체제 근간도 냉전 구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냉전 구도를 북한은 탈피하려 하고 미국은 유지하려는 데 북핵 문제의 근간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북-미 사이의 북핵 게임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다른 지역에서 쇠퇴했지만 유독 동아시아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북핵 문제를 매개로 한-미, 미-일 동맹을 전례 없이 강화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평화협정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은 굉장히 복잡한 상황과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이 유지하려는 한반도 냉전 구도도 깨질 수 있다. 60년의 한반도 질서가 무너지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미국의 구실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북핵과 마찬가지로 평화협정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비켜갈 수 없는 문제이다. 평화협정도 좋고 그 상위 개념인 평화체제도 좋다. 이젠 6자회담에서 북핵과 함께 의제로 다뤄야 하지 않을까?
어찌됐든 상황은 북핵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충분조건에 가깝게 만들고 있다. 역설적으로 북핵의 몸값이 최고치에 도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적절한 시기에 북한이 경제발전 구상을 마치고 핵 포기 의사를 밝힌다면 어떻게 될까. 핵 포기와 평화협정을 바꾸겠다면 또 어떻게 될까?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북한이 소설을 현실로 만든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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