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찾아온 무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 가로수마저 강아지처럼 혀를 길게 늘이고 숨을 헐떡이는 것 같습니다. 잇따른 원전 가동 중단과 블랙아웃을 우려하는 걱정 때문에 시민의 체감 무더위는 훨씬 더 큽니다. 그래도 6년 만에 재개된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있어, 조금은 마음속 더위를 식혀줍니다. 대화가 원만히 이뤄져 남북의 무더위와 갈증을 날려버릴 빗줄기도 함께 몰고 와주길 기대합니다.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대화의 목표는 하나, 한반도 평화입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북한 핵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현안이 쌓여 있지만, 그 꼭대기에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가 있습니다. 갈등하다보니 생긴 문제도 있고,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도정에서 만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걸림돌이 있다고 거기서 중단할 게 아니라, 때론 뛰어넘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해야 합니다. 북핵에만 매달릴 경우 대화는 잘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북핵은 남쪽엔 치명적인 위협이지만, 북쪽엔 생존 수단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북이 개방 대신 선택한 것이 핵무기였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생존 문제와 남북의 공존 문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정착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정에서 북핵은 정리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려 하는 건 북핵이 아닙니다. 이제는 시한폭탄이 되어 우리 국민에게 실질적이고 급박한 위험이 되고 있는 남쪽의 핵시설, 원전에 관한 것입니다. 북핵에 매달리면서 우리 안의 핵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북핵보다 더 위험한 게 우리 원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됐습니다. 물론 북핵을 외면하려는 건 아닙니다. 정부는 지난주 원전 비리 대책을 내놨습니다. 올해 들어 두번째이고, 지난해부터 계산하면 다섯번째입니다. 이 정도면 사실 이제는 정부가 쓸 대책이 없다고 공표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아무리 대책을 세워도 사고는 나는데 더 할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북한의 경우, 핵에 대한 통제권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틀어쥐고 있습니다. 핵무기는 사용하는 순간 상대는 물론 자신도 궤멸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북쪽 수뇌부는 관리 및 통제에 만전을 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 저희를 파괴하도록 놔둘 순 없는 거죠. 때문에 부정이나 비리 등 인위적인 요소, 자연재해 등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작습니다. 반면 우리 원전은 1년에 5번이나 대책이 발표될 정도입니다. 어떤 대책을 내놔도 사고로 직결될 비리 사건이 계속 터집니다. 사실상 통제 불능입니다. 통제가 되는 북의 핵무기, 통제 밖의 남쪽 원전. 시민들은 과연 어느 쪽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비약이 아니냐고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 살펴보죠. 돈의 유혹입니다. 증식할 수 있는 기회만 보면 달려들어 유혹하는 게 돈이고, 저 죽을 무덤인 줄 모르고 돈한테 돌진하는 게 사람입니다. 윤창중씨처럼 성에 미친 사람도 있지만, 더 치명적이고 보편적인 것은 돈입니다. 기자 생활 하면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습니다. 명예와 돈과 권력 등 모든 걸 가진 사람들이 돈의 유혹에 끝내 넘어가 패가망신의 길을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둘도 아니고, 엊그제까지 그런 일은 계속 되풀이되었습니다.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권을 푼돈에 넘어간 양아치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대통령의 오른팔인 이광재, 대통령의 집사이자 친구인 정상문, 꽤나 아끼던 후배 박정규 등 내로라하는 정권 실세들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잡아 족친 게 언제라고, 돌아서자마자 4대강 전도사 추부길씨를 시작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오른팔, 왼팔, 머리, 다리 거의 남기지 않고 돈의 유혹에 넘어가 줄줄이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대통령 형인 이상득,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절친 천신일 등 원로그룹부터, 핵심 참모 김희중과 박영준 등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들이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김씨는 대통령 집무실을 지키던 최고의 문고리 권력이었고 박씨는 서울시장 시절부터 엠비의 실세 측근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천억원대의 돈을 착복한 전두환·노태우씨를 처단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소통령으로 불리던 차남 김현철, 대통령의 금고지기 홍인길씨가 뇌물 먹고 들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현직에 있을 때 두 아들과 권노갑씨가 구속되는 걸 봐야 했습니다. 참여정부의 실세들도 그렇게 끌려갔고요.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돈이란 혼자 조용히 먹고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청탁이 들어오고, 부정한 거래가 뒤따릅니다. 공짜가 없습니다. 대체로 ‘검은돈’은 거래되는 규모에 따라 국민이 당하는 고통도 비례하는데, 예외가 있습니다. 원전 비리가 그것입니다. 규모는 작더라도, 그로 말미암은 결과는 국가와 국민에 치명상을 안길 수 있습니다. 지난해 비상발전기가 고장났고, 그 상태에서 핵연료를 교체했던 고리원전 1호기에서 문제가 터졌다고 생각해보십시요. 고리원전에서 부산시청까지 거리가 25㎞, 양산 23㎞, 울산시청 24㎞입니다. 어제 일요일 65만여명이 몰렸다는 해운대까지는 21㎞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당시 반경 30㎞ 지역에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현재 부산에는 350만명, 울산에는 110만여명의 시민이 삽니다. 사고가 났을 경우 도대체 견적이 나오질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교체한 부품이 십수만건에 이릅니다. 그동안 처벌받으면서도 줄기차게 돈을 받아 챙겼으니, 그 수많은 부품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 원전은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입니다. 더 끔찍한 것은 그것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통제할 수 없다는 거죠.
정부가 무관용의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사소한 비위도 엄벌에 처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말만 안 했지, 비위가 드러나면 엄벌했습니다. 그래도 비리는 계속 발생하고, 원전의 고장도 계속됐으며, 정부의 대책 발표도 되풀이됐습니다. 무관용, 건설과 운영의 분리, 최고가낙찰제를 도입한다고 비리가 해소될 것이 아니라고 보는 까닭입니다. 똥이 있으면 파리가 들끓고, 낟알이 굴러다니면 쥐가 몰리고, 돈이 있으면 부정과 비리가 꼬입니다. 원전에 대한 근본 대책은 원전을 없애 가는 것뿐입니다. 원전은 너무 위험합니다. 비용 또한 엄청납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돈이 더 들더라도, 무한한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을 개발해야 합니다. 당장 비용이 덜 든다고 뇌관이 풀린 핵폭탄을 옆에 끼고 살 순 없습니다. 북핵만큼이나 우리 원전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과 의지를 갖고 접근하시기 바랍니다. 북핵의 위험성이 원전의 위험성에 가려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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