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오는 25일로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 후반기의 화두로 ‘국민 통합’을 내걸었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를 “중장기 국가 발전을 위해 풀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숙제인 우리 사회의 각종 분열 요인을 극복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세 가지 큰 분열 요인을 꼽았다. 역사로부터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 정치 과정에서 생긴 분열의 구조, 경제·사회적 불균형과 격차로부터 생길지도 모르는 분열의 우려가 그것이다.
국민 통합이 주요한 국가 목표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체제 차이를 넘어서 평화 통일을 이뤄내야 하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 참여정부가 의욕을 갖고 시작한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이 잘못된 역사의 상처를 상당 부분 치유하고 국민 통합에 기여하리라는 데도 동의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여전히 한나라당과의 연정 추진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망스럽다.
노 대통령은 예나 지금이나 중도파 정치인이다. 그의 튀는 스타일이 주는 인상을 걷어내고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참여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대부분 중도적이다. 그래서 보수세력만큼이나 진보세력으로부터도 비판을 받는다. 열린우리당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도 중도정당이라는 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이런 위상은 우리 정치 상황에선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비해 큰 이점을 갖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사람의 정치 성향은 진보·중도·보수가 비슷하다. 환경 문제와 남북 관계에서는 진보 쪽이 많고, 경제정책에서는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다. 복지·노동·교육 등의 사회정책과 대미관계에서는 중도 쪽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중도를 중심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 국민의 절대 다수가 모여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지금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30%를 밑돈다. 집권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도 20% 남짓이다. 이것이 분열요인 때문일까?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무책임하거나 어리석다. 지난 4·30 재·보선에서 23명의 열린우리당 후보가 모두 떨어진 게 지역주의 탓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큰 원인은 중도정권·중도정당으로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고 정책에서도 창의성과 일관성이 모자랐던 데 있다.
정치에서 통합이란 핵심세력을 중심으로 흐름을 형성하고 이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정치적 지역구도도 그런 꾸준한 노력과 함께 서서히 바뀌는 것이지, 성향이 다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함께 정부를 만든다고 해서 단번에 개선되지는 않는다. 경제·사회적 불균형도 재정·금융·복지·노동·교육 등 각종 정책을 통해 중산층을 튼튼하게 육성해 나감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바른길이다.
지금 정치 판도에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확실하게 중도세력을 구축하고 지지 기반을 넓혀나갈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수 쪽으로 개혁적 자유주의, 진보 쪽으로는 사회민주주의까지 포괄한다면, 거의 모든 현안에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국민 통합이다. 나아가 남북 통일을 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
옛말에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고 했으나, 그 역도 옳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정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과 자신의 정체성부터 굳건히해야 좁아보이는 길도 넓혀가며 앞으로 갈 수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