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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최장집과 진보적 자유주의의 도전 / 고명섭

등록 2013-06-30 19:10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안철수 싱크탱크의 이사장을 맡음으로써 최장집 교수는 한국 정치 현실에 두 번째 발을 담갔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으로 활동한 첫 번째 참여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 시기에 그는 이른바 ‘최장집 사상검증’에 휘말렸다. 한국 수구세력의 저열하고도 몰상식한 공격은 학자의 양심을 난도질했다. 그가 참여한 정부는 사태를 발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봉합했다. 그는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학문세계로 돌아온 그는 김대중 정부 말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조망하는 저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펴냈다.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이 책의 첫 문장에서 민주화 시대가 그에게 안긴 좌절과 상심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후 10여년 동안 그의 이론적 관심사는 민주주의였다. 종심에 이르러 다시 정치 현실에 관여하게 된 그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한국 정치의 어젠다로 내놓았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을 ‘진보적 자유주의’에서 찾았다고 해도 좋을 제안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자유주의인가. 한국 진보파에게 자유주의는 그리 탐탁한 이념이 아니다. 분단 이래 수십년 동안 자유라는 말은 냉전반공세력의 전유물이자 민주화운동 탄압의 명분이었다. 반공주의의 폭력적 자유가 조금 수그러든 뒤에는 신자유주의의 비정한 자유가 들이닥쳤다. 악마의 맷돌은 우정과 연대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유’의 채찍 아래서 무한경쟁에 내몰린 삶은 벌거벗겨져 쓰레기가 되어 간다. 반공자유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자유주의의 배반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주의란 어떤 것일까.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자유주의자를 가리켜 ‘잔인성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의 이상은 사회 시스템에서 비인간적 잔인성을 몰아내는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 철학의 대표자라 할 존 롤스는 잔인성을 최소화한 사회를 고안해내려고 분투했다. 그는 밑바닥 사람들까지 자유를 향유하면서 인간답게 대우받는 사회를 <정의론>에서 그렸다.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평등은 가장 열악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충분한 이득이 돌아가는 경우에 한해서만 용납된다. 분배의 정의는 자유로운 사회의 토대이다. 롤스의 자유주의는 한없이 평등에 가까워지는 자유주의다. 요컨대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가 롤스의 기본 모델이다.

정치적 차원에서 보면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신체에 피와 심장을 선사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몸통은 애초 ‘인민주권’과 ‘다수의 지배’였다. 다수의 지배와 다수의 전횡 사이 거리는 멀지 않다.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리는 자유주의의 견제와 개입이 없으면 독재로 떨어질 수 있다. “볼셰비즘과 파시즘은 반자유주의적이기는 하지만, 반민주주의는 아니다”라는 카를 슈미트의 말은 바로 이 사태를 가리킨다. 좌우익 전체주의는 ‘자유 없는 민주’의 극단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만나 법의 지배, 권력분점, 인권 보호, 양심·사상·언론·결사의 자유라는 내용을 얻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은 자유주의 정신에서 자라나온 것들이다.

최장집 교수가 제안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 정치적 자유주의를 한 축으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를 키우려면 자유주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경제 영역에서 나타난다. 바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지점에 진보적 자유주의가 서 있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진보’의 강도이다. 진보에 얼마나 힘이 실리느냐에 따라 자유주의는 중도에 머무를 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그의 두 번째 참여는 성공할 것인가.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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